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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장산 雲長山을 버려야 전북이 산다.
2010년 05월 30일 (일) 00:37:17 박용근 기자 qcchoe@hanmail.net

호랑이 눈을 가졌다는 송익필이 호남의 지붕위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다.

운장산은 노령산맥의 최고봉이다.  연석산, 서봉, 중봉, 동봉,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은 전북알프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서봉을 북두칠성의 전설이 깃든 칠성대로, 중봉을 송익필의 호인 운장대로, 동봉을 삼장봉으로 부른다.

     

   
 
서봉, 중봉, 동봉의 높이가 거의 비슷하고 사실 동봉인 삼장봉의 높이가 1133미터로 중봉인 운장대의 1126보다 높지만 운장대가 최고봉으로 인식되어지고 있으며 운장대를 호남의 지붕이라고도 한다. 

 운장산은 이름보다 대단한 산이다.

지도를 펴놓고 지명을 살펴보자. 주천면, 정천면, 안천면, 용담면, 부귀면이 주위에 있는데 용담면과 부귀면은 뜻을 쉽게 알 수 있으니 그냥 넘어가고 주천면은 원래 주자학의 주자(주희)를 나타내는 주자천이 줄어서 된 말이고, 정천면은 정자(정이)를 나타내는 정자천이 줄어서 된 말이고, 안천면은 안자(안회)의 안자천이 줄어서 된 말이다.

부귀면에는 황금리가 있고, 정천면에는 봉학리 학동이 있지만, 운일암 반일암이 있는 주천면의 주자천을 따라 올라가면 대단한 이름이 이어져 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무릉리, 부처님이 나오려나 대불리, 학선동, 독자동 그리고 처사동이 있다.

처사는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서 은둔한 선비들을 일컫는 말인데, 실제로는 처사 칭호를 받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삼정승불여일대제학, 삼대제학불여일처사라는 말도 있다. 처사가 정승보다 낫다는 얘기다.

명덕봉, 명도봉이 가리키는 바 크고, 가장 서쪽 봉우리인 연석산의 연자가 벼루연(硯)자니 학문 연구의 형상이 산위에 올라와 앉게 된다. 연석산과 서봉인 칠성대 사이에는 오성대가 있는데 이 오성대에서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송익필이 책보며 놀았다고 한다.

운장산의 중심 봉우리인 운장대는 자가 운장인 송익필 자신을 나타내니 송익필이 호남의 지붕위에 올라탄 꼴이 된다.

동봉인 삼장대는 세 번째 운장대라는 뜻인지 삼장법사의 삼장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구봉산에 이르면 다시 송익필이 나타난다. 송익필의 자가 운장이요, 호가 구봉이라 했으니 호남의 지붕이라는 운장산을 온통 송익필이 장악하고 있는 꼴이다.

     

   
 
송익필이 누구인가

송익필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이며 ‘8문장가’ 중 한사람이이다. 서얼 출신인 그는 ‘서인의 모주’로 불릴 정도로 탁월한 지략가였다. 송강 정철의 특급 참모로 조선 중기의 거의 모든 사화에는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 본래 ‘반쪽짜리 양반’인데다 선친의 정변 밀고에 연루되어 유배를 당했고, 형기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운장산에서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여립을 위시한 1000여명이 희생되고, 반역향, 호남핍박의 시대를 연 기축옥사의 일으킨 장본인이 정철이며 정철의 모사가 송익필인데 그 송익필이 왜 하필이면 임진왜란 때 북으로 도망가지 않고 운장산에 왔는가?

송익필은 정여립의 혼백과 민중을 감시하러 왔다.

부여에는 조룡대가 있다. 조룡대는 낙화암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섬 모양의 바위이다. ‘옛날 당나라 군대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소정방이 웅진에 주둔해 있어, 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중 갑자기 풍랑이 일어 진군할 수 없게 되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수소문하여 그 연유를 알아내고는, 수중암에 걸터앉아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강물 속에서 백제 무왕(武王)의 화신인 청룡을 낚아 올림으로써 용의 조화를 막고 풍랑을 멎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죽어서 용이 된 무왕을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낚시질하여 잡아 다시 죽였다는 얘긴데, 이것은 부관참시와 같은 것이다.

부안 개암사 입구에는 보령원이 있다. 보령원은 김유신장군의 사당이다. 몰살당한 부흥군의 영혼을 구제하고, 실의에 찬 중생을 어루만져주기 위해서 원효와 의상 같은 당대 최고의 스님들이 나타난 것은 환영할 일이나. 입구에 정복자 김유신 장군의 사당인 보령원이 있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런가?

김유신은 신이다.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신이 되어 신라를 지키는 만파식적을 만들었다는데, 이곳에 김유신 장군이 원효대사나 의상대사와 함께 나타난 것은 한 편으로는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협박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 송익필은 죽도에서 죽은 정여립의 혼백을 감시하러 운장산에 온 것이다. 모악산이 보이고 죽도가 보이는 호남의 지붕 운장산의 꼭대기에 앉아서 정여립의 혼백은 물론 호남 민중을 감시하러 온 것이다.

서봉(칠성대)를 독제봉이라고도 하는데 송익필이 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임금을 모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봉의 봉우리 위용이 주변 산세를 굽어 살피는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어 감시기능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구봉산도 마찬가지다. 운장이 송익필의 자이고 구봉이 송익필의 호이기 때문이다. 정여립이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천하공물설과 '누구라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는 하사비군론을 품었기에 송익필은 천황산이 거슬렸던 것이다.

운장산을 버려야 전북이 산다.

전북은 400여 년 동안 송익필의 굴레를 쓰고 있는 것이다. 반역향의 굴레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 굴레를 벗어야 한다.

나는 알량한 관광수입을 위하여 수치스런 이름을 자랑스럽게 쓰고 있는 부여를 불쌍히 여긴다. 백마강, 낙화암, 조룡대와 같은 패망국의 수치스런 이름을 버려야 한다. 부안의 김유신 사당도 없어져야 한다.

전북도와 진안군은 수치스런 운장산(雲長山)을 버려야 한다. 구름 속에 깊이 숨어 있는 큰 산, 범접하기 어려운 산인 운장산(雲藏山) 본래의 이름으로 돌아가야 한다. 구봉산은 천황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송익필을 운장산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데일리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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