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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금산사
2009년 11월 05일 (목) 19:57:28 박용근 기자 dailyjeonbuk.com

   
 
   
 
정보제공 : 김제시 문화관광과 063-540-3172

소개

진표율사가 통일신라때 762년(경덕왕 21년)부터 766년(혜공왕 2년)에 이르는 6년동안 가람을 대규모로 일으켜 세운 사찰이다. 금산사의 창건 역사는 정확한 사실을 기초한 자료가 없어 진표율사의 중창을 실질적 창건으로 꼽는다.

진표율사 이전에 금산사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삼국유사]에 ‘진표는 완산주의 만경현 출신으로 아버지는 진내말, 어머니는 길보량이었다. 나이 12살에 금산사의 숭제(崇濟)법사에게 출가하여....’라고 하였으므로 진표율사의 출가 이전에 금산사는 존재했던 사찰임이 분명하다.

금산사는 후백제 때 견훤에 의해 부분중수가 있었다고 전하며 견훤은 고려에 투항한 아들 신검에 의해 미륵전의 지하실에 3개월간 유폐되기도 했다.

오늘날의 금산사가 있게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한 것은 1079년(조선조 문종 33년), 해덕왕사(1038~1095)가 절의 주지로 취임하면서부터다. 혜덕왕사는 절의 남쪽에 광교원을 창건하고 [법화현찬], [유식술기] 등을 비롯한 장소 (章疏) 32부 353권을 간행하였고 가람을 일신하였다.

그러나 금산사는 1592년 임진왜란의 병화로 가람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이후 1601년 수문대사를 필두로 많은 스님과 대중이 참여한 복원불사는 30여 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여기에 특별히 지훈(智訓), 석준(釋俊), 덕행(德行), 응원(應元), 학련(學蓮), 천정(天淨), 심윤(心允), 문익(文益), 지수(智守)스님 등의 각고한 노력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금산사 가람의 대부분이 이때 복원중창한 모습이다.

금산사의 주요가람 및 문화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미륵전
우리나라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건물론 손꼽힌다. 3층구조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다층 사찰건축으로 한국건축사의 업적으로 꼽힌다.
(국보 제 62호)

■ 대적광전
5여래와 6보살, 즉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약사불,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봉안한 전각이다. 이곳에는 각 보살의 존명을 새기고 구체적인 영험과 가피력을 적어놓은 수마단이 있다.
(보물 제476호)

■ 대장전
진표율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세웠다. 미륵전을 짓고 이를 장엄하는 정중목탑으로서 팔각원당형의 건물을 조성하였다. 대장전의 문살은 소슬꽃무늬살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보물 제 827호)

■ 당간지주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구실을 한 이 지주는 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 28호)

■ 석등
고려시대의 팔각석등이다. 석등은 화창의 창문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거의 완벽한 원래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보물 제 828호)

■ 석련대
정확한 이름은 석조연화대. 높이 1.67m, 둘레 10.3m가 넘는 거대한 작품으로 은근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보물 제 23호)

■ 육층다층석탑
본래 12층으로 조성되었으나 현재 11층만 남아 있으며 전체 높이가 2.18m이다. 이 탑은 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에서 고려시대의 화려하고 장식적 공예탑으로 넘어가는 초기의 작품으로 고려시대의 공예탑이 지니는 초기적수법을 간직하고 있다.
(보물 제 27호)

■ 석종
형태를 따 석종형 부도라 한다. 방등계단의 중심에 돌의 판석으로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석종형 부도를 세웠다. 고려시대의 뛰어난 예술감각이 엿보이는 석종이다.
(보물 제 26호)

■ 오층석탑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 1971년 석탑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모악산 금산사 오층석탑중창기>와 함께 금동관음상, 여러 소불상이 발견되었다.
(보물 제 25호)

■ 노주
지대석,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상륜부로 이루어진 높이 2.3m의 석조물. 고려시대의 조성기법을 온전한 모습으로 간직하고 있다.
(보물 제 22호)

■ 혜덕왕사 진응탑비
금산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고 광교원을 창건하여 수백권의 경전을 간행했던 혜덕왕사를 기리는 탑. 1095년 금산사의 봉천원에서 입적하자 국왕이 혜덕왕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호를 진응이라하여 1111년에 세웠다.
(보물 제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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