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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익산향교 대성전(益山鄕校 大成殿)
2009년 11월 01일 (일) 20:56:05 박용근 기자 dailyjeonbuk.com

   
 
   
 
위치 : 전북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89-1
시대 : 조선시대
설립일 : 조선태종 7년(1398) 창건
관리처 : 익산향교재단
팩스 : 063-840-3291
연락처 : 063-850-4175
정보제공 : 익산시 문화관광팀 063-840-3541

소개

시도유형문화재 115호(지정일: 1985.08.16)인 익산향교 대성전(益山鄕校大成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多包)식 건물로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도내에서 가장 장중한 감을 주는 건물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성전은 정확한 창건기록은 알 수 없으나 조선 태조 7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1983년 보수 과정에서 숭정2년(崇禎二年) 3월에 재건 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대성전(大成殿) 이외에 명륜당(明倫堂) 교직사(校直舍), 동재(東齋), 서재(西齋), 동무(東蕪), 서무(西蕪), 제기고(祭器庫) 등이 있다.

금마에서 여산쪽으로 가다가 익산종합고등학교를 조금 지나면 교동마을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하마비(下馬碑)와 홍살문을 따라 200여 m 가면 금마산 아래쪽에 익산향교가 자리하고 있다. 향교는 담장으로 둘러진 약 800평의 대지 위에 각 건물들을 배치하여 예전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이 향교의 뜰에는 약 400∼500년쯤 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어 향교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향교의 정문 앞에는 익산의 동헌(東軒)자리에 있었던 관리들의 공덕비(公德碑)와 선정비(善政碑) 등을 옮겨다 세운 10여 기의 비석이 서 있다.

익산향교는 조선 태종(太宗) 7년(1398년)에 창건하였다. 그 후 선조(宣祖) 때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말미암아 소실된 것을 중건하였으나 그 중건 년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익산향교가 옮기어져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되었다는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익산향교는 중설위(中設位)이다. 그러므로 대성전(大成殿)에는 중국의 오성(五聖)과 십철(十哲), 육현(六賢)을 배향(配享)하고, 동,서무에는 우리나라의 십팔현(十八賢)을 배향하고 있다.

향교의 건물로는 3칸으로 된 외삼문과 5칸으로 이루어진 교직사와 3칸으로 이루어진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약간 북동쪽으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3칸의 명륜당을 세웠다. 이 명륜당에서 다시 서쪽으로 약간 높은 담장을 지나 내삼문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내삼문 안에는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다.동재와 서재는 옛날의 이 곳 학생들의 기숙사와 같은 건물이다. 현재는 없지만 옛날에는 이 밖에 사마소(司馬所), 권학제(勸學齊), 흥학당(興學堂), 권선당(勸善堂)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대성전은 높이 2.3m의 잡석 축대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반의 맞배지붕으로 된 겹처마로 양 박공머리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그리고 다포식으로 공포의 내외가 모두 1출목(一出木)이며, 중앙은 간격이 넓어 공간포(空間包)를 두 개 받쳤다. 외부 출목에는 각각 3개씩 쇠서(牛舌)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향교(鄕校)는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이다. 서울의 사학(四學)과 마찬가지로 향교도 성균관(成均館)의 하급 관학(官學)으로서 문묘(文廟),명륜당(明倫堂) 및 중국,조선의 선철(先哲),선현(先賢)을 제사하는 동무,서무와 동재,서재가 있어 동재에는 양반, 서재에는 서류(庶類)를 두었다.

향교는 각 지방관청의 관할 하에 두어 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에는 각 90명, 도호부에는 70명, 군(郡)에는 50명, 현(縣)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고, 종6품의 교수와 정9품의 훈도(訓導)를 두도록『경국대전』에 규정하였다.

향교에는 정부에서 5∼7결(結)의 학전(學田)을 지급하여 그 수세(收稅)로써 비용에 충당하도록 하고, 향교의 흥함과 쇠함에 따라 수령(守令)의 인사에 반영하였으며, 수령은 매월 교육현황을 관찰사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향교는 임진,병자의 양란과 서원(書院)의 발흥으로 부진하여 효종 때에는 지방 유생으로서 향교의 향교안(鄕校案)에 이름이 오르지 않은 자는 과거의 응시를 허락하지 않는 등의 부흥책을 쓰기도 하였다.

고종 31년(1894년) 이후 과거제도(科擧制度)가 폐지되면서 향교는 이름만 남아 문묘를 향사(享祀)할 따름이어서 1900년에는 향교재산관리규정(鄕校財産管理規程)을 정하여 그 재산을 부윤,군수 등이 관장토록 하였다. 1918년 조사된 바로는 당시 향교의 총수는 335, 소관토지는 48만 평이었으며, 그 재산은 문묘(文廟)의 유지와 사회교화사업(社會敎化事業)의 시설에 충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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