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2.6.28 화 09:07 
검색
황병근 예총 전북연합회장
진철우가 만난 사람
2007년 11월 21일 (수) 박용근 기자 ccwoo1234@hanmail.net
<제목> 황병근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진철우가 만난 사람-

-살아 숨 쉬는 예향 전북 만들기에 평생 바친 만년 청년-
-도립국악원 개원, 국악 본산지 위상 굳혀 큰 보람
-


불도저!
황병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북연합회장을 일컫는 말이다.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낸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려 지기도 하지만 어려운 장애 요인이 생길 때마다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마치 불도저와 같다는 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황병근 회장은 올해 73세다. 옛날 같으면 벌써 은퇴했을 나이지만 그는 아직 현역이다.
50대가 무색할 정도의 기력과 정열을 과시한다.
70평생을 그런 청년의 기백으로 살면서 전북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황 회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뵙는데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깡마른 얼굴이라 다소 꼬냥꼬냥한 인상이긴 하지만 너털웃음에 소탈한 입담이 금새 상대를 편안하게 한다.
나는 첫 인사로 건강을 여쭤봤다. 아직까지는 이상 없다는 답변이다. 예의 그 소탈한 웃음을 웃자 드러나는 치아가 아직도 건재함을 보여준다.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았는데 소회가 어떠신지요.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살아 온 삶이 여유는 없었지만 후회스럽지는 않아요. 미약하지만 고향 전북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봉사했다는 자부심이 있으니까요. 도립국악원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일, 조선왕조실록 전주 환수 추진 운동을 벌린 일, 독립기념관에 비치 된 익산미륵사지 모형도와 경주 황룡사 모형도의 크기가 다른 것을 동일하게 하도록 문제를 제기해 관철시킨 일 등은 지금도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지요. 또 도의원 시절‘ 문예진흥특위를 만들어 낙후된 전북문화의 발전 대안을 찾고, 전북도의 조직을 개편해 문화관광국을 신설토록 주도한 일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예총전북연합회장을 맡은 지난 2004년 이후 지금까지는 저희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를 예총답게 치러내는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예를 들어 부임 첫해에 치른 전라예술제의 경우 그동안 없었던 개막공연을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대로 꾸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것은 예총 홍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전북예총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전라예술제의 도비 지원 예산 증액과 지역 순회개최를 통해 지역문화 발전을 꾀한 점 등도 성과라면 성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황병근 회장은 작가나 연주자와 같은 예술인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70평생 중 40여년이 문화예술과 관련된 삶이다. 그의 그러한 토양은 어쩌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리라 짐작된다. 선친은 한국 서단(書壇)의 거목이자 이 시대 마지막 선비로 존경 받던 석전 황욱(石田 黃旭) 선생이시다. 선생의 3남1녀 중 막내였던 그는 엄격한 가풍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자유분망하게 자랐다. 특히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그는 전주공업고등학교 시절에는 브라스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연주했고, 이어 육군 제3군악대에서도 트럼펫 주자로서 실력을 인정 받았다. 현재 그가 창설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노인 밴드그룹 ‘에버그린밴드’ 역시 그의 그러한 경력과 열정에 의해 탄생된 것이다. 이처럼 황 회장과 문화예술의 역학관계는 소년시절부터 이미 예약이 돼 있었던 셈이다. 군대 제대 후에는 당시 국내 최대 영화사였던 세기영화사 전북지사를 2년여 동안 운영하기도 했던 그가 국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나이 50세 되던 지난 1984년이다. 당시 건설협회 상임고문으로 있던 때 국악협회 이사로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수석부회장이 됐다가 회장의 사퇴로 곧바로 회장에 추대되면서 부터다. 그가 회장 취임 후 처음 치러낸 행사가 전국고수대회였다. 예산이 없어 하루 행사로 대충 체면치레에 그쳤던 이 행사를 3일 간으로 늘리고 국무총리상을 신설, 대회 위상을 한 층 높임으로써 전북을 국악의 본향으로 각인 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국악인들과 머리를 맞대면서 그들의 생활이 너무 고달프다는 걸 알게 되자 이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국악인 생활문제와 전북 국악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로 마음먹는다, 1984년 12월 24일 전북도가 문광부에 도립국악원 설립을 발의해 이듬해 문예진흥원으로부터 5억원의 지원금을 받아낸 것이 그 결과물이다. 1986년 7월 마침내 대사습보존회라는 이름으로 개원된 전북도립국악원은 순전히 황 회장의 그 같은 의도와 추진력에 의해 탄생된 작품인 것이다. 당시 도립국악원 개원과 관련된 황 회장의 노력과 역할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전북도가 신청한 도립국악원 설립의 종자돈은 문예진흥원이 선정․지원하는 각 시․도 특장부문 대상지에 선정돼야 받을 수 있었다. 황 회장은 각 시․도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일주일 동안이나 여관에 머물면서 당시 문예진흥원의 관계공무원들과 접촉했다. 애지중지하는 선친의 서예작품을 아낌없이 선물해 환심을 샀는가 하면 저녁엔 어떻게든 술자리를 마련, 전북의 실정과 선정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그들을 설득해 마침내 받아 내는데 성공했다. 끈기와 열정과 사명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립국악원 초대 원장을 지내셨는데 무척 힘 드셨겠어요.
󰡒우여곡절 끝에 개원은 했으나 의외로 국악인들의 호응이 시큰둥해요. 교수부를 만들어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국악을 가르치려는데 교수도 없고, 배우려는 사람도 없어요.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지요.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던 게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하지만 결과는 대 성공이었지요. 이듬해엔 연구단과 연주단이 개설되고 이어 창극부와 무용부를 둔 도립국악단이 창단되면서 국악원은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 국악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된 겁니다. 그렇게 됨으로서 단원들의 대우도 직급별로 공무원에 준하게 돼 일단 경제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게 됐고요. 재임 중 가장 뿌듯한 성과로 기억되는 도립국악원 창작 창무극 ‘춘향전’은 참 대단했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국내 공연은 물론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초청공연을 통해 절대적인 호응을 얻었었지요. 창무극 ‘춘향전’은 대형 오페라를 능가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작품입니다. 100명이 넘는 스텝진과 출연진,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무대 메카니즘, 화려한 무대 의상과 미술, 게다가 국악원 연주단의 절제된 선율이 어우러진 그러한 작품을 다시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황병근 당시 도립국악원장은 1986년부터 1995년까지 10년간 봉직했다. 그 10년동안 그는 국악원의 틀을 바로 세우고, 국악의 저변확대와 국악의 위상정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때로는 오해와 모략을 받기도 했지만 기(氣)와 신념으로 모든 장애를 이겨냈다.
황 회장은 도립국악원장을 그만두던 1995년 전라북도의회의원이 된다. 도의원 시절 역시 그는 전북의 문화발전과 관련한 도정 챙기기에 주력한다.

-도의원 시절 얘기를 들려주시지요.
󰡒도의원이 돼 처음 한 일이 전북도 조직개편이었어요. 당시에는 내무국 산하에 문화체육과가 있었는데, 문화발전을 최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려면 이것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어 문화관광국을 신설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아주 잘 한 것 같아요. 이와 함께 도의회 내에도 문예진흥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문화관련 행정을 꼼꼼히 챙겼습니다. 특별히 기억되는 도의원 시절 일화도 두어 가지가 있지요. 하나는 독립기념관에 경주 황룡사 모형과 익산 미륵사 모형이 나란히 전시돼 있는데 그 축소 비율이 다르다는 겁니다. 당시 실상사 주지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 달려가 확인한 결과 사실이 그래요. 황룡사는 1/30인데 미륵사는 1/50로 제작돼 확연히 차이가 나더라고요. 전북의 자존심 문제인데다가 역사를 왜곡한다는 생각에 요로에 적극 항의해 바로 잡은 일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아직까지도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만 이조왕조실록의 전주 환수 문젭니다. 전란에서 전주가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내고 또 보존해 오던 실록을 서울대 도서관에 보관하는 것이 잘 못 됐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펼쳐져야 할 것입니다.󰡓

-예총회장 임기 중 성과와 향후 계획은 뭔지요.
󰡒앞에서도 잠간 언급했지만 제가 회장이 된 이후 가장 역점을 둔 것이 전라예술제의 예산 증액과 행사의 내실을 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산문제는 부임 첫해에 1억5000만원이던 것을 올해는 2억원, 내년엔 2억5000만원으로 증액시켰습니다. 그동안 전주에서만 치러지던 전라예술제도 2005년엔 익산, 올해는 군산에서 갖는 등 순회 개최를 시도해 지역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지역의 호응이 매우 좋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특히 이번 군산은파유원지 일원에서 치러진 전라예술제는 행사기간 5일 내내 관객이 초만원을 이뤄 대성공이었지요. 전북예총은 현재 장르별로 10개협회와 9개의 시․군지부 등 모두 19개 단체가 소속돼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점을 두는 부분은 각 단체별 활성화와 회원들의 화합입니다. 개인의 이익 보다는 전북문화 발전을 위해 봉사한다는 의식을 갖도록 이끌겠습니다.󰡓

-70평생을 올곧게 살아오신 생활신조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저는 공자가 말씀하신 ‘공(恭) 관(寬) 신(信) 민(敏) 혜(惠)의 다섯 가지를 항상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말로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을 말합니다. 공경하면 남이 나를 없인 여기지 않고, 관용을 베풀어 너그럽게 처신하면 사람이 따르고, 믿음이 있으면 남이 일을 맡기고, 민첩하게 행동하면 많은 일을 하고, 은혜를 베풀면 뜻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 사람을 부릴 수 있다는 가르침이지요. 부족함이 많은 저로서는 지키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면서 살았지요.󰡓

황 회장은 70평생을 고집스럽고 당당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 전북의 문화 발전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하다해도 특유의 추진력으로 밀고 나갈 것이다. 비록 몸은 늙어 가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무수히 남아 있으므로...
󰡒저는 국악인입니다. 아니 국악인이 되고 싶습니다. 국악을 위해서 이 지역 예술의 전통과 명분을 세우기 위해 또 다른 일을 챙겨 볼 생각입니다.󰡓
영락없는 청년의 마음이다. 만년 청년 황병근의 굽힐 줄 모르는 의지를 지켜보면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황병근 회장이 걸어 온 길>
1934. 4. 전북 고창 출생
1984-1985 한국 카누협회 전북도지부 초대회장
1984-1986 (사)한국국악협회 전북도지회 수석부회장 및 지회장
1984-2002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 및 이사장
1986-1988 국제로타리 제367지구 서전주클럽 회장 및 지역대표
1990 문화부장관 표창
1994 전라북도 도민의장 문화장 수상
1986-1995 전북도립국악원 초대원장
1995-1997 제5대 전라북도의회의원(문화예술특별위원회 위원장)
1995-현재 (사)호남오페라단 이사
1998-현재 (사)우리문화진흥회 이사장 및 회장
1999 석전 황욱 선생 서예 유작품 및 고서화, 고간찰,
고한서, 민속품 등 수집품 5,006점 국립전주박물관에 기증
2000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2000-2002 제6대 전라북도의회의원
2003-현재 에버그린밴드 단장
2004-현재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박용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데일리전북은 소셜 미디어로의 지향과 발맞추어 SNS 상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명사들의  
글을 집중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SNS 포커스와 일부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데일리전북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최근 인기기사
진안홍삼연구소, 잔류농약분석능력 (국
김관영 당선인, 국민의힘 전북도당 방
7월 1일 제36대 전북도지사 취임식
전북애향운동본부 “새 정부, 광역경제
김관영 당선인, “돈 버는 수산양식
“에너지 자립” 전주시 에너지센터 개
전라북도 인수위, 문화콘텐츠 입주기업
< script async src="https://platform.twitter.com/widgets.js" charset="utf-8">
  인사말씀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주소:(56401) 전북 고창군 심원면 궁산1길 73 데일리전북
전화: 063) 253-0500 | Fax: 063) 275-0500
등록번호: 전북아00023 | 등록연월일 : 2007.6.25. | 발행 · 편집인: 이대성 | 청소년 보호 책임자: 이대성
Copyright ⓒ since 2007 데일리전북.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22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