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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 빛나는 모악의 영봉...모악산의 추억
2009년 07월 25일 (토) 12:25:32 박용근 기자 qcchoe@hanmail.net
아침 해 빛나는 모악의 영봉
맑은 물 굽이치는 시내 흐르는
그윽한 정기타고 태어난 학원
오랜 전통 찬란타 우리 우전교

내가 다녔던 전주우전초등학교 교가다. 나는 매일 모악산을 바라보고, 여름이면 삼천에서 미역 감고, 물고기 잡으며 자랐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즉 60년대에는 삼천에 맑은 물이 많이 흐르고, 모래사장도 많아 전주 시내 사람들이 놀러와 물놀이를 즐기고, 물고기도 잡았다. 해수욕장은 못가도 여기서 재미있게 놀고, 모래찜질도 하고, 모래 속에서 민물조개도 잡았다.

우리는 모악산을 모악산이라 부르지 않고, 주로 무악산이라 불렀다. 그런데 지도책에는 모악산이라 표기되어 있었다. 무악산이 맞다, 모악산이 맞다 논쟁도 했지만, 책에 모악산이라고 되어 있으니, 모악산파가 이겼다.

저학년 시절에는 선배들이 모악산에 소풍가면 무척 부러웠는데, 4학년이 되자 모악산으로 소풍을 가게 되자 뛸듯이 기뻤으나, 중인리 야산에 머무르자 무척 아쉬웠다. 6학년 선배들 중에는 모악산 정상에 올라갔다 왔다는 말도 들었다.

나의 아버님은 6·25 때에 모악산에서 빨치산 토벌 작전에 투입되었었고, 그때 아버님이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는 홍두께와 다듬이 방망이가 우리 집에 있었다. 우리 마을에서 집안에 홍두깨가 있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었으므로 자랑스런 물건이었다.

모악산의 어느 절(용화사)에 서백일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이 절과 위봉사, 원각사를 근거지로 하여 용화종을 세워 교세확장을 시도했다는데, 신흥종교 교주의 부정적인 면을 나타내는 괴소문을 들으며 자랐다. 그가 죽으니 숨겨둔 부인이 7명이 나타났다나 하는 이야기, 무덤 옆에서 샘물이 솟아올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가 죽은 후 위봉사가 오랫동안 폐허로 버려져 있었다.

모악산은 신비의 산이었다. 가까운 낮은 산들과는 색깔이 달랐다. 보통의 산들이 가지고 있는 초록색 보다 더 짙은 초록색으로 차별화된 산이었다. 수많은 전설을 들으면서 자랐다.

나는 모악산 남쪽에 무릉도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었다. 모악산 너머 신비의 나라에 와 있는 꿈을 자주 꾸었다. 삼천이 거기에서 발원하고, 커다란 구이 저수지가 있었기에 내 생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모악산에 오를 수 있었다. 1971년 4월 5일 식목일이었다. 친구와 둘이서 집을 나섰다. 걸었다. 그때에는 황소리, 독배, 청도리 넘어 금산사 가는 길은 차가 다니지 못하고 우마차만 다니는 임도 비슷한 길이었다.

가는 길옆의 귀신사라는 절은 이름 자체가 무서웠다. 잘못알고 있었는지도 모르나 용화사도 서백일 이야기로 무서웠다.

용화사 옆 산 능선을 넘자 금산사가 환히 보였다. 눈부셨다. 미륵전 옆에 커다란 벚나무에 벚꽃이 만개해 있었기 때문에 절 전체가 환해보였던 것 같다. 둘은 금산사를 향해 달려갔다.

우리 할머니는 소양 송광사에 있는 불상이 앉아 있어서 그렇지, 일어서면 금산사 미륵불 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렇지만 커다란 미륵삼존불은 너무 위압적이었다. 무서웠다. 왜 미륵삼존불은 미륵보살반가상의 신비한 미소를 보여주지 않을까.

대적광전은 굉장히 큰 건물이었고, 신비 그 자체였다. 종각에 있는 종은 새로 만든 것이었다. 송월주라는 이름도, 이철승이라는 이름도 보였다. 송월주 스님은 젊은 나이에 일찍이 금산사 주지가 되었던 것 같다.

모악산 정상을 향해 오르던 중 어린 나이에도 청춘 남녀가 손잡고 등산하는 모습이 매우 부러웠다. 당시에는 등산화가 거의 없었다. 어떤 처녀는 하이힐은 벗어 양손에 들고 앞에 가는 남자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다.

당시에는 정상에 철탑이 없었다. 정상은 뽀쪽해서 동시에 많은 사람이 머무를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산을 중인리 방면으로 했는데, 여기저기에 독가 들이 있었다. ‘논밭도 없는 이곳에서 저들은 무얼 먹고 살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모악산은 호남의 주산이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호남의 관문인 여산에 들어서면 모악산이 보인다. 익산, 삼례, 전주, 서전주, 김제, 금산사, 태인, 정읍, 내장산 IC를 지낭 때 까지 계속 보인다. 호남평야 김제는 물론 전주, 완주, 익산, 군산, 부안, 정읍 어디에서도 보인다. 대둔산에서도 보이고 마이산에서도 보인다.

곡창 호남평야를 적시는 두 개의 강인 만경강과 동진강이 모악산에서 발원한다고 볼 수 있다.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에 있는 두 개의 물줄기 원평천과 두월천이 모악산에서 흘러나와 최고의 저수지인 벽골제를 직접 채웠다.

모악산이니 무악산이니 하여 산의 명칭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산 정상에 어미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설되어 있다.

그러나 곡창 호남평야를 적시는 젖줄의 발원지로서, 젖무덤 같은 산, 그래서 어머니의 성정을 지닌 산으로서 모악산을 이해하고 싶다. 산속에 숨어 있는 바위 때문에 생긴 이름이 아닌, 중생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는 산으로서의 모악산으로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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