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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선] 최고의 화가가 되고 싶다
2019년 09월 01일 (일) 22:00:17 배윤숙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난, 여류화가 천경자 님의 그림을 좋아한다. 1974년도의 작품인 '고(孤)'라는 제목의 그림을 제일 좋아한다.

그 분이 그린 그림 속의 여인들은 앞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인데 '고(孤)'라는 제목의 그림을 처음 보자마자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린 모습 그 이유만으로 좋아하기 시작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희한하다. 그렇다고 애장하고 있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문이든지, 잡지에서 그 분의 작품을 보게 되면 하다못해 손 전화 카메라로라도 찍어 가끔 들여다보며 흐뭇해 한다.

어느 화장품 회사에서 탁상용 달력을 발행했는데 다행히 그 분의 그림들이 실려 있어서 아끼게 되었고, 매달 보고난 달력 그림을 예쁘게 오려 집안 곳곳에 붙여놓고 즐거워할 뿐이다.

그림을 잘 그릴 줄은 몰라도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들르게 되는 전시회에서 마음에 와 닿는 그림이 있으면 멀찌감치 서서 화가들의 생각을 상상하기도 하고, 또한, 그림을 보고 잘 그렸다 어떻다는 등 평을 할 줄은 몰라도 나도 모르게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있느라 일행과 떨어져서 서로 찾으러 다니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한다.

공원처럼 경치 좋은 곳에 이젤을 세워놓고 기다란 붓으로 하얀 종이에 색을 입히는 화가의 모습을 보면 셔터는 누르지 않고 렌즈 속에 담기만 한 적이 있다.

붓을 잡은 손의 놀림에 따라 조금씩 산도 제 모습을 찾고 물가의 이끼 낀 돌멩이에게 제 빛깔의 옷을 입히는 화가의 모습에 매료될 뿐 나 자신이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던 내게 두어 달 전에 함께 그림 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어느 선배님의 간곡한 제의에 못이기는 척하고 따라갔다.

학생회관 평생교육원 개강식이 있던 첫날, 건물 2층에 있는 서양화실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L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자 내게는 또 다른 모임이기 때문에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되었다.

기초 공부를 하게 될 학생들이 전체 학생들 30여 명 중 반 정도를 차지하는 서양화반은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수업이 있다고 하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림공부를 해왔던 학생들은 각자 좋아하는 그림을 수채화, 유화물감으로 캔버스를 채워가고 있어 기초 공부를 하게 되는 우리들에게 부러움을 안겨주었다.

이미 전시회에 출품한 사람도 있었지만 나 같이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4B연필을 쥐어보는 이들도 적잖이 있어 위축감 같은 것은 없었다.

두 번째 날, 갱지로 묶여진 연습용 스케치북에 연필로 선 긋기부터 시작했다. 가로와 세로 선을 긋고 그 위에 45도 각도를 맞춰 사선을 긋는 것이 그림의 첫 단계였는데 쉬울 것 같으면서도 제멋대로 그어져 처음부터 그림이라는 것이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구나 싶어 멋쩍었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지 L선생님은 이젤을 앞에 두고 그림 그릴 때의 바른 자세와 선 긋는 방법 등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선 긋는 연습만도 2주일을 채우고 나서야 풍경화의 7가지 구도법과 원근법의 투시도를 배웠다. 그 다음에는 정육면체, 마름모, 삼각형, 타원형 등 정물화로 단계가 점차 높아지면서 병이나 컵 등도 그려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전시회를 연다고 하자 딸들의 놀라움과 놀림을 받았다. 3개월이 거의 다된 요즘에는 병에 꽂혀있는 꽃을 그리는데 구도는 물론 명암까지 나타나도록 지도를 받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했다. 우리의 삶, 내가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참되게 잘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도 그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그려진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잘못 그려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매스컴을 통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 또 얼마나 많던가.  살인, 강도, 도둑, 사기 등 매일 매일 삶이라는 종이에 그림을 잘못 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이런 생각도 했다. 처음 그림을 배우겠다고 스케치북을 앞에 놓고 바른 자세를 한 뒤에 팔을 뻗어 한 번에 죽죽 긋는 ‘선 긋기’의 단계는 유아기를 벗어난 유치원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기를 벗어나 유치원이라는 작은 사회에 발을 디디면서 점차 형성되어가는 사람됨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선 긋기를 제대로 하게 되고 구도도 제대로 잡을 수 있게 되어야 마침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되듯이 어린 시절부터 인격형성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성인이 되어서도 후회 없는 참된 삶을 영위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이들 교육을 잘 시키겠다는 일념에 엄하게 매로 다스리는 초등학교 다니는 남자형제를 둔 젊은 엄마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집안에 들어서면 아이들의 주의산만이 충분히 이유가 있었다. 사방팔방으로 물건들이 멋대로 놓여져 있었다.

둘째아이의 옷이 찢어졌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아이가 엄마한테 혼날까봐 숨겨두고 몰래 입고 다니는 것인지 찢어진 옷 그대로 며칠 째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보기도 했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어떻게든 엄마의 매를 피하고 보자는 생각에서 꾀가 늘면서 거짓말까지 일삼게 되었다.

그러자니 형제 중 큰 아이는 엄마의 교육방식을 닮아 동생에게 폭력을 일삼게 되고, 동생은 형이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그 두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성인이 되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길 바라면서도 지금의 성격이 성인까지 그대로 이어져 간다면 현재의 모습은 진정 잘 그어지고 있는 선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유화를 시작하자고 선생님이 말씀하시지만 아무래도 내게 주어진 일들이 많아 더 이상 스케치북이나 캔버스에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다.

가다 중단하면 아니감만 못하다는 격언과는 상관없이 그동안 줄긋는 연습을 하고 구도법과 투시도를 배우면서 내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의 삶을 더 잘 그리고자 하는 교훈을 얻은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하고 싶은 것이다.

비록 붓을 잡은 화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이미 내 생의 최고의 화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 그림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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