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2.3 목 10:38 
검색
[가곡 명태 해설과 함께하는 맛집기행- 전주 유정일식]
2008년 11월 29일 (토) 18:24:27 박용근 기자 editta1962@paran.com

[맛집기행: 전주 중화산동 유정일식]

 
 
명태 <해설>

명태 <해설>

양명문 시, 변훈 곡, Bar 오현명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 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프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 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카 ~ ~ )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 헛 명태라고 헛 ~ 쯧 ~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밤늦게 시를 쓰다가 북어와 함께 소주를 마시는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은 이 시를 쓴 시인 자신일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말라 비틀어져 입을 벌리고 있는 북어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고, 명태의 운명을 생각했을 것이다.

“명태, 너는 전생에 무엇이었느냐"고. 명태가 물었다.
”시인, 너의 전생은 무엇이었기에 나와 이렇게 인연이 되어, 내가 너의 한 잔 술 안주거리가 되어 너를 즐겁게 해주고 있느냐“고 물었다. 명태의 말 속에는 다음 생에서는 너와 나의 신세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내뱉고 있었다.

찢겨져가는 명태를 보면서 시인은 어쩌면 마치 자신의 몸이 찢겨져 나가는 아픔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시인은 명태를 위해 시를 쓰기로 했다. 그러면 명태의 불운은 충분히 보상을 받을 것이니까.
시인은 독백한다. ‘너의 육신은 내 입으로 들어가 없어질지라도 너 영혼은 환한 저승길로 가라’ 고. ‘그리하여 너의 이름이 길이 길이 남아 있으리라’ 고.

명태는 월남 문인 양명문의 시에 6.25사변중 국군장교로 있던 변훈님이 곡을 붙인 가곡으로서 발표 당시에는 가히 혁신적인 곡이었다. 1952년 초연 당시엔 기존의 한국가곡의 틀을 깨는 돌연변이 같은 음악으로 치부되어 지독한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시인은 명태의 신세와 자신의 신세를 비유하면서 이 시를 썼지만 작곡가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갇혀 젊지만 자유로울 수 없는 영혼들의 자조 섞인 신세를 명태에 비유해 풍류를 즐기는 사람으로나마 남고자 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으며, 세월이 흐른 지금엔 자연을 벗하고저 바다 앞에 선 호쾌한 장부들의 권주가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노랫말 때문인지 몰라도, 명태는 왠지 서민의 고달픈 삶을 많이 닮았다. 어부들에 의해 잡혀 올라와 북어나 동태, 생태, 황태 등 영문도 모른 채 팔자가 나눠지는 그 신세가 왠지 처량하기만 하다.
한국적인 익살, 그리고 한숨이 섞여있는 자조적이면서도 재치가 있는 노래 명태....명태와 바리톤 오현명씨의 인연을 오현명씨의 회고에서 찾아보았다.

   
 
   
 
일제시대 만주땅에서 출생한 그는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자라다 6세 때 현제명 성악곡집을 듣고 음악적 감화를 받았다. 형의 친구인 작곡가 임원식씨로부터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듣고 中 1때 교회 무대에 처음 섰고 「보리밭」의 작곡가 윤용하가 만든 조선 합창단 단원으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징병을 당해 일본까지 끌려갔다가 거기서 조국해방을 맞이하였고, 만주로 되돌아가던 중 38선이 막혀 서울을 떠돌게 되었다. 그러다 극적으로 현제명씨를 만났고 그 밑에서 일하다가 경성음악학교 장학생으로 입학, 평생의 스승 김형로씨를 만났다. 6·25 때는 좌익 학생들에 의해 납북되던 중 탈출하여 국군 정훈음악대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는 일생의 레퍼토리가 된 가곡 「명태」를 만났다.

『1951년 해군 정훈음악대에 있을 때, 연락 장교로 있던 작곡가 변훈씨가 날 위해 만들었다며 던져주고 간 악보뭉치 속에 「명태」가 있었지요. 멜로디보다 가사 위주로 가는 생소한 방식, 해학적인 가사가 좋아 발표했다가 당시엔 지독한 혹평을 받았어요. 작곡가가 낙담해 진로를 바꾸기까지 했으니까요. 1970년에 다시 불렀다가 유명해져서 어딜 가나 오현명 -명태, 명태 -오현명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작곡가 변훈(1926∼2000)은 함경남도 함흥 태생이며, 주포르투갈 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관 출신 작곡가로 함남중학교를 거쳐 연희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 53년 외교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외교관 초임시절 브라질 등지의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다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부영사와 파키스탄 총영사 등을 역임했으며,81년 5월 주포르투갈 대리대사를 마지막으로 28년간의 외교관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1947년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금잔디」를 시작으로 윤동주 작시의 「무서운 시간」, 시인 김광섭의「차라리 손목잡고 죽으리」, 김광섭 작시의 「나는야 간다」, 김소월의 「초혼」「진달래꽃」, 정공채의 「갈매기 우는구나」, 조병화의 「낙엽끼리 산다」, 김영삼 시 「귀향의 날」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작품집으로 <갈매기> (세광출판사, 1981년)가 있다.

작사가 양명문은 평양출생(1913~1985) 문인으로 호는 자문(紫門). 1942년 일본 도쿄센슈대학[東京專修大學] 법학부를 졸업하고 1944년까지 도쿄에 머물러 있다가 북한에서 8·15해방을 맞은 뒤 1·4후퇴 때 월남했다. 1951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구국대원 및 육군종군작가로 활동했다. 1955~58년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뒤 국방부 전시연합대학, 수도의과대학 등에서 시론과 문예사조를 가르쳤으며 1966년 이후에는 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자유문학가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한국시인협회와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지냈다. 1957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 펜클럽 대회와 1970년 아시아 작가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했다.

극작가 김자림이 그의 부인이다. 시인의 막내아들 형태(나라은행 미국 벨뷰 소장)씨는 "어머니는 문학 선배의 소개로 아버지에게 희곡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찾아간 것이 인연이 돼 부부가 되셨다"며 "아버지로부터 `당신은 글쓰는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 오기로 글을 써서 계속 보여드린 결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싹터, 13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고 한다.

1940년 첫 시집 〈화수원 華愁園〉을 펴내 문단에 나왔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로 쓴 몇 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어 8·15 해방 이후에는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거나 반공 이데올로기와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한 현실참여적인 시를 썼다. 대표적으로 〈부두의 만가〉(문화세계, 1953. 9)·〈푸른 비둘기〉(현대문학, 1955. 8)·〈두루미의 노래〉(자유문학, 1957. 8)·〈밤나무〉(현대문학, 1968. 8)·〈민족의 대행진〉(자유공론, 1982. 8) 등이 있다. 시집으로 〈송가 頌歌〉(1947)·〈화성인 火星人〉(1955)·〈푸른 전설〉(1965)·〈이목구비〉(1965)·〈묵시록〉(1973) 등이 있다.


 

박용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데일리전북은 소셜 미디어로의 지향과 발맞추어 SNS 상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명사들의  
글을 집중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SNS 포커스와 일부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데일리전북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최근 인기기사
군산대 조혜영 교수, 한국간호과학회지
군산시, 11월 28일 0시부터 '사
동진강 야생조류 분변 정밀검사 결과,
전북도, 국회·정부 예산확보 ‘키맨’
11월 26일 오늘의 역사..1906
새만금 동서도로 개통..25일 12시
전주시 농업인대학, 박과채소 졸업생
< script async src="https://platform.twitter.com/widgets.js" charset="utf-8">
  인사말씀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주소:(56401) 전북 고창군 심원면 궁산1길 73 데일리전북
전화: 063) 253-0500 | Fax: 063) 275-0500
등록번호: 전북아00023 | 등록연월일 : 2007.6.25. | 발행 · 편집인: 이대성 | 청소년 보호 책임자: 이대성
Copyright ⓒ since 2007 데일리전북.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22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