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18.6.25 월 15:58 
검색
[특선수필] 지금은 효도계약서를 쓰는 시대..三溪 金 鶴
2018년 03월 09일 (금) 07:04:28 김학 crane43@daum.net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이 유행가 가사를 들으면 머리가 끄덕여진다. 오래 살다 보니 별별 일들이 다 생긴다.

가장 가까운 부모 자식 간에도 말로 한 약속은 믿을 수 없어서 문서로 계약서를 써야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변호사를 찾아가 공증까지 받아야 한단다. 아니 부모자식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아들이 결혼하면 살 집까지 마련해 주는 게 부모의 의무처럼 여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집을 사주겠지만 그럴 수 없으면 전셋집이라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러니 노후대비를 못한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아들에게 도시의 변두리에 전셋집이라도 얻어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세 값이 턱없이 오르는 바람에 그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도 전세제도가 점차 월세제도로 바뀌고 있다지 않던가?

20여 년 전 아들딸 3남매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자취를 할 때 관악구 봉천동에 25평짜리 조그만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준 적이 있었다.

방이 세 칸이어서 3남매가 생활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계약기간 2년이 지나자 8천만 원이던 전세금을 1억 3천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

집주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구로구에 있는 같은 크기의 아파트를 1억3천만 원에 사버렸다. 그러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얼마 뒤 큰아들이 결혼을 했을 때 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나이 또래들은 결혼을 하면 대개 단칸방에서 월세로 신접살림을 시작했었다. 형편이 나아지면 전세로 옮겨 살다가 내 집을 마련하는 게 꿈이었다.

누구나 그러려니 했었다. 지금은 국민소득이 2만 8천 달러로 올라가는 시대다. 그렇지만 결혼한 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집은 거의 없다.

부모가 노후자금을 털어서 아들의 신접살림집을 마련해 주면 아들은 분가하는 게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니 연금을 받지 못하는 노부모들은 정년퇴직 이후 살아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요즘 노인들 사이에서는 ‘다 쓰고 죽자’는 이야기가 크게 번지고 있다. 스테판 폴란의 저서『다 쓰고 죽어라』라는 책이 나온 뒤 그런 사고방식들이 널리 번지는 것 같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이란 어디 그렇던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下愛有 上愛無)는 말처럼, 무엇이나 가진 걸 자식들에게 다 주어도 아깝지 않게 여기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도 부모의 그 마음을 모른 채 부모에게 노후 생활비를 보태주지 않는 자녀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자녀들이 많으니 부모가 자식에게 집을 사주거나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자식은 부모에게 봉양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의 각서(覺書)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효도계약서(孝道契約書)란다. 부모와 자식 간에 계약서를 써야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 계약서를 쓰다니, 이거야말로 신용사회가 무너졌다는 반증이 아닌가?

우리나라 민법상 자식에게 조건 없이 증여한 재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돌려받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효도각서를 쓰게 하라고 권하는 모양이다.

시중은행이나 변호사를 찾아가면 효도계약서 작성법을 상담할 수도 있단다. 효도계약서 공증업무를 주로 해 주는 법률사무소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은 분명 자식농사가 부모의 노후를 보장하던 농경시대는 아니다. 그래서 요즘엔 ‘돈과 119가 진짜 효자’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어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더 어안이 벙벙하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이 40%는 돈이라고 했다.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아버지가 63세에 돌아가시면 좋겠다고 했단다.

그래야 퇴직금을 남겨놓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옛날과는 달라도 몹시 달라졌다. 이런 세상이니 부모 자식 간에도 효도계약서를 쓰라고 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성싶다.

그래도 ‘다 쓰고 죽자’는 부모보다는 ‘효도계약서’를 쓰고라도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부모가 나을 게 아닌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두렵기 짝이 없는 세상이다.

김학의 다른기사 보기  
ⓒ 데일리전북은 소셜 미디어로의 지향과 발맞추어 SNS 상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명사들의  
글을 집중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SNS 포커스와 일부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데일리전북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최근 인기기사
군산 소형양배추, 일본으로 출발..매
익산시, 먹노린재 발생으로 철저한 예
익산시 건강생활지원센터 백세총명 기공
시민과 익산시립예술단이 함께하는 행복
익산시 마동, 경로당에 시원한 여름나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크라우드펀딩 교
익산 미래 먹거리 발굴 위한 익산 R
  인사말씀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주소:(56401) 전북 고창군 심원면 궁산1길 73 데일리전북
전화: 063) 253-0500 | Fax: 063) 275-0500
등록번호: 전북아00023 | 등록연월일 : 2007.6.25. | 발행 · 편집인: 이대성 | 청소년 보호 책임자: 이대성
Copyright ⓒ since 2007 데일리전북.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22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