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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함의 수용 79] ‘양위’란 말만 들어도 '귀에 쥐가 날 지경'이다
2018년 02월 19일 (월) 20:18:48 이선구 okesk@naver.com
   
     

사실 영조는 자신의 외아들 사도세자가 의소를 낳았을 때, 두 해 전 화평옹주를 잃은 슬픔 때문인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마마, 사실 그때 소첩도 많이 서운했더랍니다. 며느리에게 ‘네가 순산으로 아들을 낳았으니 기특하다.’ 정도의 말씀 한 마디조차 안 하시어 혼자서 눈물지었어요. 오히려 선희궁 마마(영빈 이씨, 이선의 생모)께서 첫 1주일 동안 산실 근처에서 머무시며 저를 보살피셨어요. 하지만 대왕께옵서 선희궁 마마를 나무라시며 ‘선희궁이 옹주는 잊고 세자빈만 좋아하니 인정머리가 없구나.’ 하셨습니다.”

“아무리 즐거운 생각을 해보려 해도 별로 떠오른 건 없고 나쁜 기억들만 자꾸 떠오르는군. 아버님껜 화평옹주만 자식이고 난 자식도 아닌가 보오. 그러니 화평 누나가 죽은 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화평, 화평’ 하며 노랠 부르지.”

이선은 순간 아바마마께서 제대로 침소에 드셨는지 걱정되었다. 예순아홉의 노구로 분노하고 친국을 했으니 그로 인한 과로를 잘 이겨내셨는지 염려스러웠다.

“저하, 그래도 노여워하지 마세요. 제가 의소를 잉태했을 때 꾼 꿈 이야길 해드리겠습니다.”

“꿈이라니? 여태 발설하지 않고 속에 담아둔 이유가 뭔가?”

“그때 실은 꿈에 화평 고모가 자주 보이고 내 침실까지 들어와 곁에 앉기고 하고 내게 가만히 웃기도 했습니다. 화평 고모가 해산을 하시다가 세상을 떴지 않습니까? 그러니 귀신이 고모의 모습을 하고 날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얼마나 염려했는지 모릅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사실 의소의 어깨에 푸른 점이 있고 배에는 붉은 점이 있어 꼭 화평옹주와 비슷했다. 그래서 한동안 궁궐에선 화평옹주가 환생했다는 소문이 일었다.

“나중에 아바마마와 선희궁 마마께서 함께 오시어 아기의 몸을 확인하며 기뻐하셨잖소?”

“아닙니다. 되레 슬퍼하셨습니다.”

“끝까지 화평 누님 타령만 하셨다는 이야길랑 이제 그만 합시다. 생머리가 아프오.”

“마마, 화협 고모가 돌아가셨을 때가 기억나십니까?”

“벌써 10년 전 일이오. 나도 그때 슬픔에 겨워 정신을 차리지 못했잖소.”

“저하께선 화협 고모를 유달리 우애하셨잖습니까?”

갑자기 이선의 말이 멈추었다. 화협 누나의 죽음으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가. 그해(영조 28년) 봄에는 의소가 세상을 떴고 가을에 산(정조)이 태어났으며 11월에 화협 옹주가 홍역으로 떠났다.

병환 내내 화협 누나의 안부를 묻느라 보낸 별감들이 길에 연이어 있을 정도였다. 특히나 화협은 빼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부왕의 미움을 받았고 그 점에서 세자 이선은 자신과 동류의식을 느껴 많이 우애했다.

이선이 홀로 어둠 속에서 흐느꼈다.

남자 나이 스물여덟 살이면 대장부도 대단한 헌헌장부다. 하지만 부왕이 자신에게 질문을 한 다음 답변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귀를 씻고 그 물을 화협옹주의 처소 담 너머로 버리셨던 일이 생각나 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여러 번씩이나…….

   
     

어쩌면 그렇게 아들과 딸 하나(화협)를 극도로 미워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오죽했으면 이선이 화협 누나에게 이런 말을 하며 함께 헛웃음을 웃었을까.

우리 남매는 부왕의 씻으시는 도구로다.

얼마나 흘렀을까. 홍씨가 손을 뻗어 등을 돌리고 누운 동궁을 더듬었다.

“마마, 이제 그만 우시어요. 조금만 더 견디시면 대왕께옵서 양위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마음에 없는 이런 말은 그야말로 사기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아버지 홍봉한을 위시한 노론 세력이 사도세자를 포기했고 자신조차 친정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상태다.

훗날 세손 이산이 영조 뒤를 이어 등극했을 때 그녀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변명으로 가득 찬 기록물을 집필(한중록)한다.

남편을 포기한 부인.

세자를 포기한 세자빈.

뭐라 변명하든 홍씨에겐 같은 등식이 성립된다. 그녀는 이제 양심도 거리끼지 않는다. 임금께서 갑자기 승하라도 하시어 정말 세자가 왕위에 오른다면 노론을 싹 쓸어버릴 까봐 자신이 그걸 막는 유일한 버팀목 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스스로 다짐했다.

양위라니.

이선도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부왕께서 얼마나 정정한데 양위를 하실까. 노론의 쑤시개질에 넘어갔든 아니면 당신의 근력이 넘쳐서 젊은 여자가 필요했든 며느리보다 10살이나 어린 부인을 정식 왕후로 들어앉힌 지 이제 겨우 4년이 지났을 뿐이다. 이

선은 몇 년, 아니 10년 안에는 양위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 판단한다. 이제는 그놈의 단어 ‘양위’란 말만 들어도 귀에 쥐가 날 지경이다.

자기 나이 여섯 살 때 첫 양위 소동을 벌이더니, 열여섯 살 때부터는 수를 셀 수 없이 ‘양위’ 소동을 벌이면서도 권력을 꼭꼭 틀어쥔 부왕이 아닌가.

권력에 완벽하게 도취해 있는 부왕의 언어와 행동의 거대한 괴리乖離 앞에서 아들만 고통스럽고 힘들 뿐이다.

   
     

이선이 홍씨 모르게 눈물을 닦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때 화협 누나의 죽음으로 며칠을 울었는지 기력조차 쇠잔한 끝이었소. ‘언사상소言事上疏(국사를 말하는 상소)’ 사건으로 12월 그 극심한 추위에 눈까지 맞으며 선화문 앞에 엎드려 밤을 지새운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나 아오?”

“저도 그때 밤새 잠 못 이루고 천지신명께 기원했어요. 인원 대비마마께서 속히 결단을 내려주시어 세자께서 병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얼마나 빌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10월에 홍역에 걸렸는데, 11월에는 화협 누나가 떠나 그 고통을 받은 데다, 12월에 그 사건으로 눈이 머리와 등짝에 수북이 쌓이도록 엎드려 아바마마께 죄를 빌고 또 빌며 벌을 기다렸으니 내 몸이 얼마나 축났겠소?”

“참, 당신도 진중하고 침착한 성품이세요.”

홍씨는 남편이 폐세자 되더라도 목숨만은 무사히 유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시민당 뜰 얼음 바닥 위에서 석고대죄하다가, 창의궁으로 걸어가 또 이마를 돌에 부딪치며 석고대죄하다가, 결국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망건이 찢어진 일은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소.”

“그래도 타고나신 효심과 충실하고 순후한 성품으로 가식이 없기에 하실 수 있으셨어요. 그러시는 동안 대왕마마의 꾸짖음이 얼마나 지엄하셨습니까? 그걸 다 견디셔서 공손한 도리를 다하셨으니 결국 일을 잘 수습하여 명성을 얻지 않았습니까?”

명성을 얻다니. 그 당시 노론의 공작으로 인해 세자의 권위가 길에 나뒹구는 개똥처럼 평가절하되고 말았는데.

“여보, 머리 아픈 이야긴 제발 그만합시다. 마침 기분 좋은 기억이 떠올랐소. 우리 산(정조)이가 태어날 때 태몽을 내가 꾼 일은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상서롭기만 하오. 신미년(영조 27년)에 경춘전에서 잠을 자다가 용꿈을 꾸었잖소.”

오랜만에 세자와 세자빈이 동시에 미소 지을 일이 생겼다.

“저하께서 한 밤중에 벌떡 일어나시더니 흰 비단 한 폭을 내놓으라 하시어 제가 얼마나 당황한 줄이나 아세요? 그렇지만 흰 비단 폭에다 당신이 손수 꿈에 본 용을 그려 침실 벽에 붙이셨습니다.”

“용이 여의주를 휘감는 꿈은 정말이지 지금도 생생할 정도요.”

“알고 보니 그게 바로 귀한 아들을 얻는 꿈이었어요. 태어난 세손이 골격도, 풍채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고요. 아바마마께서도 축하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세손이 비상하고 뛰어나니 조상 신령들의 도우심이라. 네가 정명공주의 자손으로 네 몸에서 이 경사가 있으니 나라에 공이 있도다. 부디 아기를 잘 기르되 검소하고 소박하게 하는 것이 복을 아끼는 도리니라.”

그때를 생각하며 이선도 감격했다.

“궁궐 안팎으로 은혜롭고 경사스럽기 그지없었소.”

세손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금 썰렁해지면서 현실의 고통이 엄습해왔다. 세자는 말할 것도 없고 홍씨도 계속 뒤척이며 여전히 잠을 못 이루었다. 생각해보니 상서로운 일이 하나 더 떠올랐다.

병풍에 대한 일이었다. 10살 때였고 사도세자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침방에 치라고 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가 보내준 수병풍이 있었다. 병풍을 본 고모가 말했다.

“어머나. 이 병풍은 세자빈의 조부께서 소장했던 것인데, 이것이 어찌 영빈 마마께 갔으며 손녀의 침방에까지 오게 된 것일까요? 참 이상합니다.”

내용인즉, 홍씨 조부의 하인이 받아 저잣거리에서 팔았던 것이다. 살림에 보태어 쓰느라 귀천을 알아보지 못한 덕분에 돌고 돌아 손녀에게 온 것이었다. 친정아버지 홍봉한이 좋아하며 덕담을 건넸다.

“거참. 기이하군요. 이 병풍의 용 빛깔이 을묘년 6월에 꿈에서 본 용의 빛깔과 똑같습니다. 세자빈 마마를 잉태했을 때 그 태몽을 제가 꾸었는데, 흑룡의 금빛 비늘이 침실 위에 빛나는 꿈이었습니다. 그 후로 꿈을 잊고 있었는데 오늘 이 병풍을 보니 그때 본 용과 똑같습니다.”

기분 좋은 추억거리 덕분에 홍씨는 새벽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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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선구(59) 프로필

전북대 의대 졸업.
2007년 <계간 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시의 칼레누스>, <베네치아 코텍스>, <왕릉의 잔>, <사자의 춤>(전 3권), 등과 단편 소설집 <유리병 속의 코끼리>, <욕망을 팝니다> 발표
<계간문예> 소설문학상, 아시아황금사자문학상, 하이네 문학상,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장려상), 한국PEN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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