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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수필] 얼굴 없는 천사
2018년 01월 09일 (화) 13:57:59 임두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온누리에 사랑이 가득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구세군자선냄비와 함께 불우이웃돕기운동이 한창이다. 

오늘따라 매서운 날씨인데도 KBS-1TV방송에서는 ‘나눔이 행복입니다‘라는 주제로 전국특별생방송을 진행하고있다.  

온정의 손길은 끊이질 않았다. 고사리 손에서부터 할머니할아버지, 각계각층에서 불우이웃돕기행사에 나셨다. 진행자는 재치 있는 말솜씨로 방송을 이어나갔다. 

어느 어린이는 돼지저금통을, 아흔이 넘었다는 어느 할머니는 파지를 팔아 모은 돈을, 몸을 가누기도 힘든 어느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고 나와서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모금함에 돈을 넣었다. 세상에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싶으니,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내 고장,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앞에는 ‘천사의 비’가 세워져 있다.

2010년 1월, 노송동주민들의 뜻을 모아 “당신은 어둠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를 새겨놓았다. 

해마다 계속되는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고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숫자 천사(1004)를 연상하는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7년 12월 28일 오전 11시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사무소 뒤로 가면 돼지저금통이 놓여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걸려오는 얼굴 없는 천사의 목소리였다. 주민센터직원은 전화를 받자마자 건물뒤편으로 달려갔다. 

나무 밑에는 A4용지박스가 놓여 있었다. 이날 얼굴 없는 천사가 기부한 성금은 6천27만9천210원으로 5만원권 지폐 6천만원과 동전 27만9천210원이었다.

그리고 성금함 속에는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든 한 해 보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내년에는 더욱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편지가 들어있엇다.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천사가 19차례에 걸쳐 놓고 간 성금은 무려 총 5억5천813만8천710원이라고 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들어 먹고살기가 어렵다고들 아우성이다. 정부에서는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온도탑’의 수은주는 2017년 12월 말 현재78.2도에 머물렀다. 

목표액의 1%가 모일 때마다 수은주가 1도씩 올라간다고 한다. 예전에 없는 일이라며, 기부단체들은 발을 구르고 있다. 불경기 탓이라 할 수 있겠지만, 방송국과 일간지를 비롯하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종교단체바자회, 재해구조협회, 복지재단 등 각종단체에서 연말이면 모금활동을 몰아쳐 하는 게 문제다. 

그리고 얼마 전, 희소병(稀少病)딸을 위한 기부금 12억 원을 받아 흥청망청 써버린 이영학 사건과 더불어 1년 넘게 끌어온 최순실국정농단사건에 온 국민이 회의(懷疑)를 느꼈으리라.    

내 자신이 낮아지면 겸손해지고 높아지면 교만해진다고 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려니 싶다. 

세상을 함께 하다보면 별스런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분은 큰일을 하고서도 아랫사람에게 공(功)을 돌리는가 하면, 아랫사람이 공을 세웠는데도 윗사람이 생색을 내는 파렴치한도 있지 않던가? 

그뿐 아니다. 사소한 일을 해놓고서 공치사하는 꼴불견이 있는가하면, 대단한 일을 하고서도 아무런 일 없다는 듯 묵묵히 지내는 사람도 있다. 예수님께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말씀이 새삼스럽다.  

나도 이제,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볼 나이가 된 듯하다.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이제와 생각하니 세월의 무상이 느껴진다.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전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해부학교수로 재직하다가 지금은 전북시신기증자협회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분과 식사를 함께 했었다. 이분으로부터

'시신(屍身)을 기증하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라며 본인도 시신기증등록을 해놓았다고 했다. 그 분의 말을 귀담아 듣고부터 내 마음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죽으면 육신(肉身)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두고 갈 선물은 무엇일까? 내가 시신을 기증하면 여러 의학도들이 차원 높게 실험실습을 하여 여러 생명을 구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시신기증계약서를 써 놓고 2개월이나 망설였다. 어려서부터 유교사상에 젖어왔던 나였기에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웠다. 

시신기증계약서는 본인이 인적사항을 기재해야 하고, 죽은 뒤 시신을 책임질 유가족의 동의서가 필요했다. 말이 그렇지, 아들딸로부터 동의서를 받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 

설득하는데 진땀을 빼야 했다. 전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시신상담실을 찾아서 시신기증등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죽어서도 마지막 선물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내 마음이 한결 가뿐했다.  

내 인생에도 말할 수 없는 굴곡이 있었다. 그래도 끼니걱정은 않고 살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주변에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불우한 가정이 많다고 한다. 나 자신 얼굴 없는 천사는 아니어도, 크고 작음을 떠나서 그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어야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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