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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선수필] 하늘 비빔밥.....김학
2017년 11월 09일 (목) 06:41:46 김학 crane43@daum.net
   
   

만 피트 상공에서 먹는 하늘 비빔밥은 천하일미(天下一味)였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Tashkent)를 향하여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아시아나 항공은 빼곡이 들어앉은 승객과 무거운 짐을 싣고 시속 761㎞로 날아가고 있었다. 7시간 30분이 걸리는 긴 여정.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창 밖은 온통 하얀 뭉게구름이 깔린 운해(雲海)…. 금방 솜틀에서 뽑아낸 솜을 펼쳐놓은 듯 편안해 보였다.

갑자기 되살아난 고향생각. 막내 고모 시집갈 때 두툼한 솜이불을 만들려고 안방에 펼쳐놓았던 그 솜덩이가 떠올랐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솜이불을 만드시던 그 정경이 아련히 되새겨졌다. 맨손으로 그 운해에 뛰어내려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것 같은 정경….

멋진 제복 차림의 스튜어디스들이 통로를 오가며 승객들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냉수, 차, 와인 등 무엇이든지 주문만 하면 바로바로 대령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기내식 주문을 받았다. 메뉴 중에 비빔밥이 있기에 그것을 주문했다.

하늘에서 먹는 비빔밥은 지상의 비빔밥과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었다. 대접에는 비빔밥에 필요한 갖가지 채소와 나물이 담겨져 있었고, 밥은 따로 나왔다. 대접에 밥을 넣고 비볐다. 치약처럼 튜브에 든 고추장을 짜내서 섞고, 조그만 팩에 담긴 참기름을 넣었다. 싹싹 비벼서 비빔밥 한 숟갈을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내가 평소 즐겨 먹었던 전주비빔밥, 바로 그 맛이었다. 지상에서 먹었던 비빔밥맛보다 오히려 하늘에서 먹는 비빔밥맛이 더 좋았다. 분위기 탓인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비빔밥을 먹다니,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신선도 이런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선이 오히려 나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비빔밥의 고장이라는 전주에서 살고있다. 때때로 경향 각지에서 나를 찾아오는 손님에게 전주비빔밥을 대접하는 게 나의 일상사가 되었다. 전주 친지들과도 곧잘 비빔밥을 먹는다. 비빔밥은 나와 가장 가까운 먹을거리다.

나는 어려서부터 비빔밥을 좋아했다. 옛날 외가에 가면 제사를 지낸 뒤 깊은 밤에 밥을 비벼서 제사에 참석한 일가친척들이 함께 나눠 먹곤 했었다. 지금도 그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평소 집에서도 식탁을 둘러보아 채소나 나물이 많으면 양푼을 가져다 비벼먹기를 즐긴다. 아침이나 저녁 가리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백반 집에 가서도 스스로 비빔밥 만들어먹기를 좋아한다.

좌우를 둘러보니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일행들도 비빔밥을 먹고있었다.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이 그릇을 비웠다. 얼굴이 가무잡잡한 외국인들도 비빔밥 삼매경에 빠져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벌로 준 빵 한 개는 그대로 물렸다. 비빔밥이 빵을 물리친 셈이랄까.

전주 비빔밥이 기내식으로 제공되고, 외국으로 수출된다는 뉴스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중국에 갈 때는 비행시간이 짧아서 그런지 맛을 볼 기회가 없었고, 오래 전 미국이나 유럽에 갈 때에는 아예 비빔밥이 기내식으로 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경도 못했었다. 그러니 나로서는 이번이 첫 경험이다. 첫 경험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첫 사랑도 그렇고, 아내와의 첫날밤도 오래 기억되기는 다를 바 없다.

여객기는 식사도 거른 채 쉬지 않고 서쪽으로 날고있었다. 고속버스라면 2시간마다 휴게소에서 쉬어 갈 수 있으련만 하늘에는 비행기가 쉴 휴게소가 없다.

포만감에 젖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생각은 다시 비빔밥으로 모아졌다.

비빔밥을 창안한 조상들의 슬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비빔밥을 먹을 때마다 생각한 일이다. 지금은 음식찌꺼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비빔밥이야말로 그 해결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은 밥에 남은 찬을 섞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면 음식찌꺼기가 남을 게 없다. 그뿐이 아니라 비빔밥은 영양의 보고(寶庫)다. 육·해·공군의 식품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것이 비빔밥이다. 비빔밥이야말로 고르게 영양분을 섭취할 수는 최고의 건강식이다. 색깔로 보아도 비빔밥은 아름답다. 울긋불긋 총천연색이다. 비빔밥이야말로 컬러시대에 가장 알맞은 음식이다. 게다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하니 이 비빔밥을 아니 먹고 어쩌겠는가. 이 세상에 이처럼 지혜롭고 맛깔스런 음식이 또 어디 있으랴. 아무리 프랑스요리나 중국음식이 유명하다 한들 어찌 비빔밥을 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

타쉬켄트를 떠나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또 비빔밥을 먹어야지 하는 기대를 안고 눈을 감았다. 오늘따라 내가 단군의 자손이란 사실이 더욱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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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학(金 鶴) 약력

1980월간문학으로 등단/<아름다운 도전> <하여가 & 단심가> 등 수필집 14권, <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 등 수필평론집 2권/펜문학상, 신곡문학상 대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한국수필상, 전주시예술상 ,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역임, 신아문예대학 교수(현), e-mail: crane4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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