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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작수필] 졸혼(卒婚) 선언
2017년 11월 05일 (일) 22:53:33 한성덕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국어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졸혼(卒婚)’이라는 단어를 만날 수 없었다. 비슷한 게 있나 찾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으니 ‘정략결혼’(政略結婚)이었다. “

두 집안 혹은 두 사람 사이에 결혼 관계를 맺어 친밀감이나 이권 등을 도모하려는 정략, 또는 당사자의 의사나 이해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시키는 결혼”이라고 했다. 졸혼과 전혀 상관없는 단어지만 결혼의 비이성적 행태란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요즘에 와서 ‘졸혼’(卒婚)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학교에서 수업연한이 끝나면 졸업(卒業)하고, 연수기간을 마치면 수료한다. 그와 같이 부부 사이에도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의 ‘졸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부에게서 만큼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요, 편리주의에 따른 저급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졸혼’이 뭔가 싶어서 인터넷을 뒤졌다. 구구한 여러 설명이 있었다. 나이 든 부부가 이혼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는 형태란다. 2004년 일본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을 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던가? 부부가 자유롭게 사는 생활방식을 취하려고 ‘졸혼’을 하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전혀 모르던 남녀가 한 몸이 되었다. 젓가락을 같이 빨고 함께 샤워장에 들어간다. 벌거벗었어도 부끄러워하던가? 그 자체로도 신비스러운 일이다. 결혼은 조물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자 걸작이다. 오랜 세월 쓴물과 단물을 마시고, 기쁨과 슬픔도 나눈다. 괜한 일로 토라지지만 칼로 물배기라 하지 않던가? 고운 정 미운 정을 칭칭 감고 사는 사랑의 관계가 부부다.

그 좋은 세월을 자녀에게 헌신했다. 승진하느라고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인생길에서 어떤 도움이 될까봐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났다. 사업을 확장하느라고 끼니 굶기를 밥 먹듯 했다. 그 사이에 눈동자는 흐려지고, 머리는 백발이 되며, 허리는 구부정해지고, 걸음걸이마저 어기적거린다. 적어도 30년에서 40년을 살아온 게 부부다. 앞으로도 그만한 세월을 더 살아야 한다. 그동안 남편 혹은 아내는 일터에서 열심히 일했다. 자기 능력껏 혼신을 다한 삶이다.

이제는 두 사람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더 늙고 정신이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말이다. 서로를 품고 살아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결혼을 졸업’한다고? 역시 인간은 편리함의 귀재요, 탁월한 지혜(?)자요, 생뚱맞은 얼간이다. 순전히 나의 사고(思考)에서 나온 말이니 분노할 것까지는 없다. 결국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논리로 가자는 게 아닌가? 정말로 둘 만의 소중한 시간인데 ‘졸혼’은 너무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목회자는 두 번의 결혼을 한다. 한 여성과 만나는 육적인 결혼과, 사명자로서 교회와 결혼하는 영적인 관계다. 육적인 결혼이 가족을 돌보는 책임이 따른다면 그에 못지않은 것이 교회를 돌아보는 일이다.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목사로서 ‘가정과 교회 중 어느 것이 먼저냐?’고 말이다. 몹시 궁금해서 묻는 것이겠지만 참 곤란한 질문이다. 결혼한 사람이 가정을 소홀히 할 수 없듯이 교회 역시 다를 바 없다. 둘 다 아끼고 사랑하며 돌아봐야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가족의 기쁨이 날 흐뭇하게 하듯이 교회의 기쁨 또한 그렇다. 가족의 슬픔이 가슴을 저민다면 교회의 아픔도 다르지 않다. 가족의 고통이나 교회의 어려움이 전부 내게로 밀려온다. 좋든 싫든 두 짐을 짊어져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균형을 잃으면 둘 다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도 ‘어느 쪽이 우선이냐?’고 자꾸 물으면 늘 가족이었다. 그렇다고 교회를 등한시 하거나 밀어낸 적은 없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교회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가족이라고 했을 뿐이다. ‘가족’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교회’가 스멀스멀 떠오른다. 갈등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 관계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요, 도무지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이제 한 쪽을 접었다. 조기은퇴를 결심했으니 교회와의 ‘졸혼’이다. 앞에서 육적인 결혼관계를 길게 설명했다. 교회 역시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목사의 정년은 70세다. 아직도 6-7년이 남았다. 그러나 3년 전부터 기도하며 차근차근 준비했었다. 그 결과 두 교회를 합병하고 은퇴하기로 했다. 결단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더 그랬다.

목회자는 전후 40년을 강단에서 호령한다. 필자도 교육전도사를 포함해서 39년을 외쳤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다. 사람의 사사로운 감정이 앞설 수 없다. 그러면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및 체육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말하지 않던가? 그러니 내려놓는다는 게 쉽지 않다. 70세 은퇴를 하고서도 강단에 서고 싶어 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일반석에 앉아서 설교를 듣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려놓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후배를 만났다. 그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라 서둘렀다.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할 사람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수필에 좀 더 집착하고, 아내는 영성 있는 찬양사역자로 나서기 위해서다. 우리 은혜림교회의 몇 명 안 되는 교인들이 목사의 가족을 돌보는데 헌신했다.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이제 목회는 끝나지만 그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졸혼’은 영적인 면에서 조기은퇴를 뜻한다. 교회와 맺은 사명, 곧 직무가 끝났다는 것이지, 믿음을 버린다거나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상에서 단하로 내려올 뿐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목사 한성덕은 이제 교회와의 ‘졸혼’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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