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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선수필] 낙엽을 바라보며.....김 학
2017년 10월 30일 (월) 08:06:30 김학 crane43@daum.net
   
   

바람이 깔깔거리며 나무를 희롱하면, 나무는 수줍어 몸을 비꼬며 잎새를 떨군다. 낙엽이다. 가을이 대지에 띄우는 마지막 사랑의 엽서다.

낙엽이 진다.

노랗고 혹은 검붉은 색깔의 낙엽들이 휴지처럼 뒹군다. 어쩌다 바람이 부추기면 대지 위에 다소곳이 누워 있던 낙엽들이 잠에서 깨어나 깡충깡충 춤을 춘다. 술래잡기도 한다. 손뼉을 치며 고운 화음으로 노래도 부른다.

바람이 멎는다. 그래도, 한 잎 두 잎 낙엽은 흘러내린다. 대지가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임을 낙엽은 아는가 보다.

낙엽이 진다.

눈송이처럼, 빗방울 마냥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은 무엇이 기쁘고 흥겨워 저렇게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내려오는 것일까. 낙엽 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은 노오란 옷을 입은 은행잎이다. 떨어진 은행잎 하나를 집어 들면 금방 내 손가락 마디마디가 노랗게 물들어 버릴 것 같다.

긴 머리 소녀가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에 꽂는다. 곱게 물든 노을이 소녀를 에워싸고 있다. 센티한 소녀의 모습이 그림처럼 예쁘다. 내가 화가라면 얼마나 좋을까.

낙엽이 진다.

낙엽을 떨구는 나무를 바라본다. 긴긴 하루 시집살이를 마친 신부가 잠옷으로 갈아입는 모습이다. 도란거리는 낙엽의 대화를 듣는다. 피곤을 걸머지고 자정 가까워 귀가한 신랑이 신부에게 건네는 은밀한 사랑의 신호다.

현역에서 물러난 낙엽은 뿌리로 돌아갈 차비를 서두를 것이다. 자기 한 몸 바쳐서 찬란한 새 봄, 푸른 여름을 선물해 줄 것이다. 인간은 모름지기 낙엽의 헌신을 본받아야 할 일이다.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낙엽, 그 낙엽에 취하면 나는 구르몽의 시구를 읊는다.

“시몬, 나뭇잎새 저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쓸쓸하다/낙엽은 덧없이 버림을 받아 땅 위에 있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석양의 낙엽 모습은 쓸쓸하다/바람에 불리울 적마다 낙엽은 상냥스러이 외친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리라/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바람이 몸에 스민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아득한 옛날, 문학소녀 향(香)이는 무척 나를 따랐다. 긴 머리에 얼굴이 갸름하고, 호수처럼 맑고 별처럼 빛나는 눈을 가진 소녀였다. 향이는 네 계절 가운데 가을을 유난히 좋아했고, 낙엽을 무척이나 사랑하던 소녀였다.

어느 해 가을이던가. 나는 향이에게 이끌려 발이 부르트도록 들길이며 산길을 걸었었다. 발목이 시도록 낙엽을 밟기도 했다. 향이는 노래도 곧잘 들려주었다.

매혹적인 가수 낫킹콜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오텀·리브스'를 불렀고, 차중락의 힛트·송인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러주기도 했다.

여고를 졸업한 향이는 직장을 따라 서울로 떠나면서 곱게 물든 은행잎 한 개를 내게 건네 주었다. 소녀로 작별한 향이는 숙녀가 되었고, 숙녀가 되어 몇 번인가 연하장을 보내주더니 나의 시야 밖으로 사라져 갔다.

“저 약혼했어요. 올 겨울에 결혼할 거예요.”

어느 해 가을, 낙엽에 묻어 날아 온 향이의 엽서. 엽서의 하얀 여백만큼이나 내 마음은 공허해졌다. 떠나야 할 사람이 떠날 곳으로 떠났는데도 겨울 나목(裸木)처럼 외롭고 쓸쓸함을 느껴야 했다. 옛날옛날 아스라한 옛날의 일인데도 가을이면 언제나 그 기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우수수 낙엽이 쏟아진다.

낙엽 하나 하나가 향이의 스냅사진이 된다. 그러다가는 향이의 얼굴이 되고, 향이의 엽서가 된다. 향이도 지금 낙엽을 보고 있을까. 낙엽을 주어들고 '오텀·리브스'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열창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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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학(金 鶴) 약력

1980월간문학으로 등단/<아름다운 도전> <하여가 & 단심가> 등 수필집 14권, <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 등 수필평론집 2권/펜문학상, 신곡문학상 대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한국수필상, 전주시예술상 ,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역임, 신아문예대학 교수(현), e-mail: crane4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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