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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자의 예술기행 38] 여행에서 돌아와 루시아는 하늘나라로
2017년 10월 16일 (월) 20:34:28 이양자 osong0670@hanmail.net

“대학 졸업하고 그 해에 바로 대구에 있는 갈멜수녀원에 입교 했지요. 스페인에 본원을 둔 봉쇄 수녀원이었어요. 세계 곳곳마다 거의 활동 수녀원이거든요.

갈멜회만은 침묵 속에서 일생을 기도하며 오로지 수도의 삶을 사는 곳이죠. 어찌 보면 이기적이고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자신을 위한 기도만은 아니에요. 곧 인류를 위한 정신적 봉사지요.

신앙정신도 그쪽이 나하고 맞았지만 고모 한 분이 수녀였기 때문에서인지 어려서부터 수녀가 되고 싶었고 선택은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물론 부모님들은 제 선택을 이해 못하셨고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는 늘 제가 수녀원에서 나오게 해달라는 기도만 했대요. 호호….

결국 어머니의 이기적 기도 때문인지 8년 만에 나오고 말았어요. 종신 허원을 2년 앞두고 건강에 적신호가 왔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마냥 좋아하시더라고요. 조금씩 건강이 좋아졌고 31살에 지인의 소개로 결혼했죠. 시몬·돈보스코, 8살·3살짜리 사내아이가 있어요. 시어머니께 맡기고 왔는데 개구쟁이들이라 시어머님께 죄송해요.”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라 시집은 안정되고 이번 여행도 남편의 배려라면서 행복해했다.

“언니, 나 참 한심하고 싱겁게 보이죠? 호호…. 그냥 루시아의 전설로 이곳에 묻어 주세요. 누구에게도 얘기한적 없는 흔적인데 겨우 만남 5일 만에 언니 앞에서 무너졌네요. 지금도 가끔씩 마음이 수녀원으로 달려가요. 이런 소용돌이 때문에 남편과 아이들한테 늘 미안하죠.”

   
  페허의 폼페이  

살빛이 유난히 맑고 투명한 루시아의 양쪽 볼이 노을빛처럼 발그레했다. 로마의 깊은 밤은 루시아의 경이로운 고백에 잠자리는 한결 성스럽고 편안했다.

3일째를 맞는 아침은 루시아의 묵주 기도로 시작되었다. 조금 빠르게 시내관광에 나섰다. 미스터 박이 점심 후에 폼페이를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콜롯세움, 네로의 황금 궁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바삐 스쳐 아쉬웠어도 애천 분수대에서는 사진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애천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을 굳게 믿고 루시아와 나도 필사적으로 동전을 던졌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헵번 포즈로…. 코발트빛 샘물에 떨어진 우리의 동전은 유난히 반짝였다.

좁은 골목을 누비는 마차, 기를 쓰며 브로마이드를 팔려는 이탈리아 사내들, 떠드는 아이들, 기념촬영에 불을 켜는 관광객들…. 사람 분비는 곳에 적응 못하는 내 실체는 금방 드러나기 시작했다.

트레비의 어원은 광장으로 이어지는 세갈래 길을 뜻한다고 한다. 고작 인공으로 만들어진 이 분수가 이리 명소가 되다니…. 왠지 내 상식으로는 회의적이었지만 붐비는 인파 속에 나 역시 착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피렌체에서   1997년  

폼페이는 훨씬 외각이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라 조금 설레었다. 그러나 한눈에 들어온 메마르고 황폐한 모습은 삭막했다. 폼페이 전부를 보려면 3일은 꼬박 걸린다니 저주받은 참변의 실상이 금방 느껴졌다.

매캐한 냄새가 땅에서 솟아나는 것 같아 비위가 돌았다. A.D 79년 8월에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순식간에 생지옥이 되어버린 폼페이…. 오후 1시로 접어들고 있었던 폼페이는 평화롭고 풍요한 예쁜 도시였다고 했다.

그러나 순간에 분출된 뜨거운 용암은 도시 오후를 정지시키고 말았다. 염색집의 염료가마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상점에서는 손님을 기다리고 거리에서는 여인들이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즐겁게 떠들었다.

돈으로 스스로 귀족이 된 속물들은 섹스와 기름진 음식으로 취해 있었다. 아! 베수비오의 분노는 어찌하여 3일 동안을 저주하며 이 땅을 이리도 녹여 버렸을까? 2000년을 화산재에 묻혀 저주받고 있는 땅은 무슨 업보로 정지되어 영겁으로 가고 있단 말인가?

황망한 폐허 위를 걸으며 관광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하나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부귀영화의 부질없는 한계가 이곳에서 보였다. 귀족들이 살았던 집의 벽화들은 대부분 색채들이 선명했지만 감동적이었던 예술품들하고는 느낌이 달랐다. 감정 표현보다 집 주인의 타락적 취향을 고려한 화공들의 애환이 담겼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해학적인 것 또한 미술사적 가치로는 약해 보였다.

그러나 호화로웠던 폼페이 말년의 건축 양식과 장식들은 경이로웠다. 스스로 신분상승을 소원했던 그들의 욕심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재미있었다. 특히 베티의 집은 허세의 실상이 역력했다.

   
  나빌레라 60*40 2007년작  

입구를 들어서자 현관 벽에 닭싸움·짐승 모양 신의 표상과 한 마리의 양, 천으로 가린 사이로 야구 방망이 만한 남근과 돈자루를 들고 커다란 쇠저울에 무게를 달고 있는 베티의 초상화는 특별했다. 심지어 신체의 일부에까지 허세를 부렸던 욕심의 극치는 비참해 보일 뿐이었다.

“지금까지도 불가사의한 얘기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베티의 실제 모습이 입증될 만한 자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답니다. 왜냐면 당시 베티에게 수청들었던 여인들이 한 명도 살아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래요. 2000년 동안 베티의 물건은 신비의 상징이고 이제는 관광상품으로까지 판매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 하지요?”

미스터 박의 재치있는 설명에도 모두 흥미 잃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폼페이의 늦가을 하늘만은 유난히 맑았고, 바로 눈앞에 건너다 보이는 베수비우스 산은 고요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한 달 반도 안되어 루시아는 하늘나라로 갔다. 그의 친구가 비보를 알려왔다. 그동안 혈액암 말기로 투병 중이었다고 했다. 루시아의 마지막 여행을 그리도 까맣게 모른 채 까르르 웃고, 곤돌라를 타고, 이탈리아 미남 뱃사공과 히히덕거리고, ‘오! 사랑하는 나의 아빠’를 목 터져라 부르며 베네치아를 누볐던 이해의 11월….

하얗게 내리는 눈은 그칠 줄 몰랐고 원자력 병원 영안실에서 루시아는 갈멜 수도복을 입고 하얀 눈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게 이별을 보내왔다. 겨우 마흔을 조금 넘긴 그녀였다.

루시아와 함께 했던 저때의 11월도 어느 새 10년 세월 속에 묻혀갔다. 자줏빛 쟁반만한 플라타너스 잎이 바람에 맴돌다 떨어져 내렸다. 오늘밤쯤 서리라도 내리려는지 잿빛 하늘이 나직하게 내려앉는 쌀쌀한 오후….

“언니 루시아에요.” 금방이라도 루시아가 “따르릉 따르릉”하고 전화벨을 울려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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