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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수필] 큰오빠와 손자..........변명옥
2017년 10월 12일 (목) 07:14:18 변명옥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뱐
   
   

큰오빠는 태어날 때 젖을 빨지 못해 추운 겨울이라 젖을 짜서 화로에 데워 먹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키도 안 크고 약해서 엄마가 가장 안쓰러워했었다. 그런 큰오빠지만 장손이라 집안의 대소사와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다. 노후에 좀 편안하게 지내는가 했는데 맞벌이 하는 딸과 아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16년 전 큰오빠는 외손녀를 키워 보내고, 아들의 손자는 안 봐 줄 수가 없었는지 둘째손자를 떡 아기 때 데려왔다. 간난 아기를 키우느라고 약골인 큰오빠 내외가 폭삭 늙어버려서 보기에 안쓰러웠다. 아기가 한 밤중에 열이 펄펄 끓어 청주병원까지 달려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내 일은 아니지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기 때문에 이만 저만 고생이 아니어서 ‘늘그막에 왜 저럴까?’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큰오빠 집에는 손자 손녀 사진이 탁자 위, 거울, 벽에 잔뜩 붙어있다. 말수도 없고 무뚝뚝해 보이는 오빠가 집안을 아기들 사진으로 꽃처럼 꾸며 놓았다. 남편이 어쩌다 우리 손자 엉덩이를 두드려 주니 “그렇게 이뻐?” 하며 놀렸다고 처남은 아기사진으로 도배해 놓은 사람이 그런다고 구시렁거렸다.

큰오빠의 극진한 사랑 덕분에 잘 자란 외손녀가 유치원 때 금산인삼축제에서 그리기 금상을 탔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그린 작은 그림을 거실 중앙에 걸어놓고 보고 또 보는 것 같았다. 외손녀 그림은 오빠에게는 더 없는 기쁨이자 자랑이었다.

큰오빠는 손자 손녀가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해도 자랑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고 응원하는 편이었다. 손자도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아들이 데려갔다.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이별을 해야 했다. 영재(손자)는 할아버지 집에 다니러 오면

“나 좀 여기 떼어놓고 가.”

사정하듯이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품이 너무 그리워 유치원도 가기 싫어했다. 병약했던 영재가 초등학생이 되어 키도 제법 크고 웃을 때마다 볼우물이 쏙쏙 들어가는 귀여운 어린이가 되었다.

서울에서 여동생 딸 결혼식에 갔다가 영재를 만났다. 한참 결혼식이 진행되는데 문득 오빠 곁에 붙어 앉은 영재에게 눈길이 갔다. 화려한 결혼식은 안중에도 없는 듯 영재는 할아버지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팔뚝, 어깨를 거쳐 목과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몇 십 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처럼 애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빠는 모르는 체하며 영재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할아버지를 쓰다듬는 영재의 작은 손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저럴까?”

중학생이 된 영재가 학교에서 작은 말썽을 일으키자 할아버지에게 데려왔다. 할아버지는 힘없는 목소리로 타일렀다.

“영재야, 할아버지 얼마 못 살고 죽을 텐데 영재 걱정에 눈도 못 감고 죽겠다.”

영재는 펑펑 울면서 다시는 걱정 시키는 일은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만나고 돌아가는 날, 영재는 항상 그랬듯이 바싹 마른 할아버지를 꼭 안아주고 가서 약속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생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큰오빠는 외손녀가 교사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실에서 소리 안 나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큰오빠가 세상 소풍 끝내고 영면에 들었다. 평온하고 맑은 모습이 세상 시름 다 벗어던진 후련한 모습이었다. 없는 집 장손으로 태어나 할 일 다 하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조용하고 엄숙한 모습이었다.

올케는 마당에 지천으로 돋아나는 상추, 아욱, 쑥갓, 취가 보기 싫다고 한다. 먹을 사람도 없는데 왜 자꾸 나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겨울에 가지.’ 하며 울먹여서 나도 울어버렸다. 할아버지를 가장 그리워 할 영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작은오빠가 2009년에 먼저 가고, 큰오빠마저 떠났으니 이제 나와 여동생 둘만 남았다. 큰오빠를 보내면서 내가 먼 길 떠날 때 딸의 슬픔이 이렇게 크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그래, 살아있는 동안 즐겁게 여행도 많이 하고 살면 덜 슬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한 번은 가야할 길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마음이 다잡아지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 더 웃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나누자.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 이런 깨달음을 주고 가신 오빠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

"오빠, 천국에서 편안히 쉬세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뱐 변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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