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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수필] 다산의 하피첩과 매조도.....전용창
2017년 10월 02일 (월) 17:53:09 전용창 꽃밭정이수필문학회
   
   

2년 전에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유배지인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을 다녀왔다. 다산초당은 조금만 가면 정자에서 남해가 보이고, 40분만 걸으면 백련사라는 고찰이 있어 스님과 말동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외지에서 접근하기는 쉽지 않아 이런 곳이라서 집필활동을 하며 그 긴 유배생활을 버틸 수 있었겠구나 생각했다.

이번에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다산의 생가인 여유당과 실학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나는 복원된 생가나 현대식 건물의 박물관보다 다산의 하피첩에 더 관심이 갔다. 하피첩은 유배시절 탄생한 유물이자 국가의 보물(문화재 보물 1683-2호)이다. 하피첩(霞帔帖)이라는 이름은 첩(帖)을 만들 때 사용한 치마를 비유한 것으로, 노을(하) 빛의 붉은 치마(피)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노을빛 치마로 만든 첩(帖)’이란 뜻이다. 다산은 처음에는 경상도 포항 장기에서 귀양살이를 했으나 강진으로 유배지를 옮긴 뒤, 주막집 노파의 도움으로 거처할 방 한 칸을 얻어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 서당을 열고 호구를 이어갔다. 차츰 문인, 유학자들과 교류했다고 한다. 다산은 18년의 긴 유배생활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503권 182책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중에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는 대표적인 저서라고 한다.

하마터면 하피첩은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다산의 후손들이 대대로 보존하다가 6.25 전쟁 때 다산의 종손 정향진이 수원역에서 열차에 오르다 분실했었다. 하피첩을 잃어버린 것을 뒤늦게 안 정씨는 실신할 정도로 애통해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4년 경기도 수원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습득한 것을 어떤 건물주가 입수했다. 하피첩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06년 KBS '진품명품'에서 김영복 감정위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감정가를 당시 최고인 1억원을 매겼고, 2015년 서울옥션경매에서 7억 5천만 원에 국립민속박물관에 팔렸다. 얼마나 다행인가?

경기도 남양주에 남았던 아내 홍씨는 남편 귀양 10년째 되던 해, 다산과 결혼한 지 30주년이 되는 1806년(순조 6) 살아서는 다시 못 볼 것 같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시를 짓고,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를 남편에게 보냈다. 다산은 부인의 시와 빛바랜 붉은 치마를 받고, 여러 폭으로 마름질해 아들인 정학연과 정학유에게 경계하라는 편지글을 담았다. 네 첩의 서첩을 만들었는데 그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세 첩인데 첩의 순서는 알 수 없다. 남아있는 세 첩 가운데 두 첩의 서문에는 각각 ‘1810년 수추(首秋)’와 ‘1810년 국추(菊秋)’라고 적혀 있어 수추란 ‘가을의 첫머리’라는 뜻으로 음력 7월을 말하며, 국추란 ‘국화꽃이 피는 가을’이란 뜻으로 음력 9월을 일컫는다. 어머니 치마에 아버지가 사랑을 담아 아들에게 쓴 편지, 세상에서 이보다 값진 보물이 또 있을까? 다산의 위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노을빛 치마에 얽힌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200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의 가슴을 잔잔하게 적신다. 이때(1810년) 정약용의 나이 49세, 마흔아홉 천재가 남긴 가훈이다.

하피첩 1첩은 ‘가족 공동체와 결속하며 소양을 기르라’, 2첩은 ‘자아 확립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닦으며 근검하게 살아라’, 3첩은 ‘학문과 처세술을 익혀 훗날을 대비하라’는 내용이다.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평생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

1첩

화와 복의 이치는 옛사람도 의심한 지 오래되었다. 충신과 효자가 반드시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며, 악하고 방종한 자가 반드시 박복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선을 행하는 것이 복을 받는 길이므로, 군자는 힘써 선을 행할 뿐이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너희들은 항상 마음을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생활하지 말거라. 자손대에 이르러서 과거에 응할 수도 있고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천리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 번 넘어졌다고 반드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2첩

병든 아내가 치마를 보내 천리 밖에 그리워하는 마음을 부쳤는데 오랜 세월에 홍색이 이미 바랜 것을 보니, 서글퍼 노쇠했다는 생각이 들어 처량하구나. 잘라서 작은 서첩을 만들어, 그나마 아들들을 타이르는 글귀를 쓰니, 어머니 아버지 생각하며 평생 가슴속에 새기기를 바라노라.

쓰러진 나무에 싹이 나고, 석과(碩果)는 먹히지 않으니, 도(道)로써 나아가고 물러나며, 때에 따라 성하고 쇠하니라. 영광과 치욕이 다르지 않고, 곤궁함과 형통함은 오직 운명에 달렸으니, 마음은 성(誠)으로 기르고 몸은 경(敬)으로 가지노라.

나는 지금 벼슬을 하지 않아 너희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 그러나 가난을 구제하고 삶을 넉넉하게 한 두 글자 부적을 줄 것이니 너희들은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하나는 근(勤)이요 다른 하나는 검(儉)이다. ‘근검’, 이 두 글자는 전답보다 좋은 것이어서 평생 쓰고도 남는 것이다.

3첩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것은 다행스럽게도 너희가 온 마음을 기울여 내 글을 연구하여 그 깊은 뜻에 통달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고생스러워도 고민이 없을 것이다.

재물을 저장만 해 두는 것보다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낫다. 도둑에게 털릴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불에 탈 염려도 없다. 소나 말로 운반하는 수고도 없이 사후에까지 갈 수 있고 아름다운 명예가 천년토록 전해진다. 천하에 이렇게 큰 이익이 있겠는가?

터전을 지키지 못하는 집안은 망한 나라와 같다. 우리 집이 있는 마현은 비록 농토가 귀하고 마실 물과 땔감이 부족해도 지금까지 떠나지 못했는데, 하물며 어려운 일을 당한 지금에서야 만약 게으름과 사치를 고치지 않으면 기름진 땅에 터전을 잡아도 배고픔과

추위를 면치 못한다. 옛 터전을 굳게 지켜야 한다. 어린 손자에게 부탁한다.

매조도(梅鳥圖)

다산은 하피첩을 만들고 남은 천도 헛되이 쓰지 않았다. 남은 천에는 하얀 꽃망울 가득한 매화가지 위에 두 마리 새가 정겹게 앉은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시도 적어 넣었는데, ‘梅花倂題圖, 梅鳥圖’로 불리고 있다.

펄펄 나는 저 새 우리 집 뜰 매화 가지에 쉬는구나/ 꽃향기 짙어 즐기려 찾아왔겠지/ 머물러 지내면서 네 집안을 즐겁게 하렴/ 꽃이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많이 열리겠구나

그림 속의 두 마리 새는 부부의 화락을 상징하고, 풍성한 매화는 집안의 번창을 의미한다. 아버지와 헤어질 때 딸은 여덟 살이었다.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딸이 21살이 되어 부모의 품을 떠나 시집을 간다고 했다. 유배 간 아버지에게 시와 그림을 받아본 딸은 매조도를 바라보며 밤마다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않았을까!

다산은 사치를 경계하라는 사잠(奢箴)을 남기기도 했는데 구약성경의 잠언(箴言)을 보는 듯하다.

‘낙은 급하게 누리지 않아야 늙도록 오래 누릴 수 있고 복은 한꺼번에 다 받지 않아야 후손에게까지 내려가게 되느니라‘

‘보리밥 뻣뻣하여 맛없다 하지 마라, 앞마을에서는 불도 못 때고 있으니 삼베옷 거칠다고 말하지 말라, 헐벗은 자들은 그것도 없어 붉은 살이 보인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하라’.

‘독서를 통하여 옛 성현과 함께 할 수 있다. 배움은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그릇된 것을 아는 것이다’.

나는 우리 조상 중에 다산과 같은 거목이 있다는 게 너무도 자랑스럽다. 일본 문인들은 다산의 값어치가 대마도 전체보다 크다고 했다. 나는 이 글을 자녀들에게 보내주려고 한다. 하피첩과 매조도를 바라보며 존경받는 아빠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마음의 밭을 붓으로 가꿔보는 밤이다.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전 용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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