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17.12.18 월 22:14 
검색
[밀함의 수용 76] 호랑이 깊은 산에서 포효하니 큰 바람 이는구나
2017년 09월 29일 (금) 23:11:51 이선구 okesk@naver.com
   
     

오늘도 세자빈은 긴장이 풀어진 듯 몹시 졸고 있었다. 국문 현장에 세자가 죄인 신분으로 불려간 동안 그 지긋지긋한 현장을 상상하고 고민을 하면서도 자꾸만 밀려드는 졸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자가 옷을 갈아입으며 먼저 입술을 떼었다.

“미안하구려. 오늘 이 소동은 아바마마의 지나칠 정도로 완고한 성품 때문이오. 나한테 차라리 미쳐버리란 말씀까지 하셨소.”

세자의 갈라지고 쉰 목소리에서 그녀는 뭔가 전과 다른 큰 일이 일어났음을 알았다. 20시간이 넘도록 국문을 당하고도 대죄를 한 세자의 몸은 이미 파김치였다.

“아바마마께서 설마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게 정말이십니까?”

위로의 말을 할 법했지만 홍씨는 적절하지 않게 캐물었다.

“설마하니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겠소? 그래도 아바마마시잖소. 부자유친父子有親도 모르오?”

“이젠 여승을 어떡하실 겁니까? 뱃속에 아이라도 잉태했나요?”

가선이라는 여승을 머리를 기르게 하고 궐에 데려와 놀아난 것에 대한 핀잔이다. 이 질문에 세자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주변을 훑어보았다. 여명이 가까워선지 주변이 아까보다 조금 더 어두워졌다. 동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둘 때가 아니던가.

“오늘은 늦잠을 좀 자고 쉬어야겠소. 너무 피곤해서 그러니 날 깨우지 마오. 정신이 들면 책을 좀 보아야겠소.”

홍씨가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참 엉뚱하십니다. 이런 와중에 책은 무슨 책이십니까? 차라리 세손과 함께 오순도순 후원이나 산책하시지 않고.”

어제 아침부터 이 새벽까지 고통을 당한 세자에게 휴식이 필요할 텐데 이를 무시한 세자빈이 더 엉뚱할지 모른다.

세손의 나이 10살.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손 교육도 중요하오. 하지만 내게도 시간을 허락해주오. 세손은 침소에 잘 들었소?”

“그럼요. 소학을 늦게까지 공부하시고 침소에 드시는 걸 보고 왔습니다.”

“그렇군.”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누우려고 했을 때다.

“영의정께선 특별한 말씀을 하시던가요?”

갑자기 홍씨가 물었다. 영의정 홍봉한은 홍씨의 친정아버지다. 정승 가운데 최고 자리인 영의정이라면 서열에 있어 세자 다음으로 높은 위치이다. 홍씨는 마치 자신이 고귀한 가문 출신이라도 된 양 도도한 콧김을 내뿜었다. 그녀 자신이 세자빈에 간택될 10살 때까지 아버진 낙방만 거듭하는 과거科擧 준비생이요 자신은 색동옷 한 벌 맘대로 해 입을 수 없을 만큼 집안이 가난했던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했다.

“처음엔 사위를 위하시는 말씀을 하시다가 도중에 말을 일체 삼가시더군.”

이번 기회가 노론이 만든 세자 폐위 작전임을 홍씨는 꼭꼭 숨기고 있었다.

“어머나. 그건 당신이 죄가 없다는 걸 이미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필귀정이 아닙니까?”

“사필귀정? 아바마마의 위업에도 해당되는 말인지 모르겠소.”

“어머나.”

세자의 말투에 홍씨는 남편을 흘깃 쳐다보았다.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삐딱한 말일 수 있다.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세자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 그녀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노론 쪽에 그대로 흘려보내는 간자間者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바마마께선 자상하실 땐 너무나 자상하신 분이 때론 번개와 천둥처럼 급변하니 도저히 성격 맞추기가 힘들잖소.”

어흠.

하품을 하다 말고 그녀는 남편이 자리에 이미 누운 걸 확인하고서 좀 거리를 두고 돌아누웠다. 그녀는 남편이 도대체 맘에 들지 않았다. 남편의 성향이 무왕과 문왕의 기질을 모두 갖춘 성품이었고 그 철학과 학문이 항상 대의大義를 먼저 생각하곤 했기 때문에 임금이나 노론당의 당론과는 항상 겉돌았다.

결혼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영조 11년)였다.

安否何如 안부하여

 

꽃이 꽂힌 꽃병이 인쇄된 시전지에 쓴 세자의 네 글자 안부편지가 얼마나 친정아버지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가. 나중에 친정아버지의 서재에서 그걸 보았을 때 얼마나 기대감에 넘쳤던가. 그것뿐이 아니었다.

해는 동쪽에서 솟아 사해를 밝히고

달은 중천에 솟아 만산을 비추도다.

남편이 열 살 때 지은 제왕의 웅대한 기상이 물씬 풍기는 시였다. 해와 달은 어떤 한정된 장소와 정파만 비추는 게 아니란 의미일까? 임금께서 세자와 나누신 대화가 있었다.

“우리나라 조정 관리들은 예로부터 당론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만두게 할 수 있는가?”

“똑같이 보고 함께 등용하면 될 것입니다.”

홍씨는 좀체 잠들 수가 없었다. 세자로 말할 것 같으면 자상한 아비로서 얼마나 가족의 건강과 생일을 잘 챙겨주었던가. 하지만 요즘엔 도대체 무슨 원귀가 씌워 이토록 어둠이 밀려드는 것일까. 그래서 남편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후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까딱하다간 자신은 물론 풍산豊山 홍씨 집안까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지 모를 살얼음 판국이다.

집과 나라에 복을 닦으소서.

세자빈에 간택되어 사가를 떠나던 날 아버지 홍봉한이 자신에게 부탁한 말이었다. 지금도 그 말이 홍씨의 눈앞에 스쳐가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강조하고 있었다. 글월비자를 통해 친정아버지와 비밀 편지를 교환하여 안부와 사적인 소통을 하면서도 언제부턴가 안정이 못되고 불안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결국엔 자신이 세자 이선李煊의 여자로 남느냐, 아니면 홍씨 집안의 일원으로 남느냐, 하는 문제였다. 세자에 대한 영조의 사랑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게 확실한 이상 이제는 더 이상 이선의 여자로 남을 순 없다는 생각이었다.

세자빈 홍씨는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9년 전의 아픔이 바로 눈앞에서 보듯 너무도 생생하게 펼쳐졌다. 자신의 나이가 열여덟 살(영조 28년, 1752년) 아직도 추운 3월이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은 그때의 슬픔은 너무도 커서 무슨 말로도 알맞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는 죽어 산에 묻고 자식은 죽어 가슴에 묻는다는데, 장남 의소 세손 정琔이 세상을 떴을 때의 아픔을 어떻게 설명하랴. 그녀 뿐 아니라 정말이지 궁궐 안팎으로 큰 충격이었다. 가뜩이나 아들이 귀한 왕실이어서 삼종의 혈맥을 잇기 위해 얼마나 혼신의 노력을 다 해왔던가. 가장 놀란 사람은 부모인 세자와 자신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임신(훗날 정조) 중에 있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통명전에 급히 달려온 영조가 가마에서 노구를 내리며 탄식했었다.

“몇 달 사이에 큰며느리(현빈 조씨)를 잃고 손자까지 잃었으니, 내 마음을 어디에 비유하랴?”

통명전에 들어선 임금이 슬픔을 가눌 길 없어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임금은 효장세자를 잃었을 때(영조 4년)와 무진년(영조24년) 6월 화평옹주를 잃었을 때가 겹쳐져 저절로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데 임금이 갑자기 눈을 희번덕거렸다.

“도승지, 네 눈에도 저 요상한 것이 보이느냐? 흰 무지개가 보이는구나!”

예순 살을 목전에 둔 임금은 행여 자신의 침침한 시력 때문에 헛본 것은 아닌지 내심 긴장했다. 걸핏하면 조정의 대신들 뿐 아니라 한양 도성의 모든 백성이 들썩거리는 게 싫었던 터다. 그런데 정말로 흰 무지개였다! 도승지뿐 아니라 내관들조차 깜짝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도무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도승지가 신음을 했다.

“에휴- 전하, 무지개는 여러 색깔로 보이는 법인데 저런 모습은 처음입니다.”

“저것이 도대체 무슨 징조란 말인가? 혹시 임금을 위로하려고 하늘이 조화를 부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임금이 하늘을 다시 우러러 보았다. 흰 무지개가 해를 통과하여 하늘에 걸려 있었다. 해의 양쪽에 귀고리가 달렸고 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 기이한 모양새였다.

“전하, 관상감 영사를 대령케 하오리까?”

도승지가 허리를 구부렸다.

“그래 지금 즉시 불러오라!”

“명대로 하겠사옵니다.”

도승지와 내관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영조가 갑자기 몸을 휙 돌려 고개를 쌀쌀 내저었다.

“영사에게 자세히 파악하여 보고케 하라.”

당시는 영조가 세자에게 몇 년째 대리청정을 시키는 상황이었다. 임금은 행여 자신의 행위에 하늘이 노하신 것은 아닌지 은근히 켕긴 듯했다. 그동안 경종 독살 사건과 신임옥사辛壬獄事 후유증으로 편할 날이 없었던 임금으로선 하늘의 이상한 조화에 불안증이 다시 도질 지경이었다.

왕의 행차 앞에 잔뜩 긴장한 세자와 빈궁이 흩뜨려진 머리와 얼굴의 눈물 자국을 급히 지우고 머리를 조아렸다. 부왕과는 항상 서먹한 세자가 그날따라 죄인처럼 상체를 심하게 구부렸고, 세자의 장인 홍봉한 대감과 빈궁에 딸린 궁녀들도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바마마, 가슴이 찢어질 듯하여 말이 얼른 나오지 않습니다.”

세자가 눈물을 주르륵 흘리자 배가 알맞게 봉긋 나온 홍씨도 슬픔에 겨워 고개를 차마 들지 못했다.

“아바마마, 짧은 생이라지만 이렇듯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심정으로야 정을 따라가고 싶사오나 태중에 있는 새 생명 때문에 슬퍼할 수도 없습니다.”

태중의 새 생명이 훗날 정조대왕이다. 행여 태교에 문제가 생길까봐 제대로 상심할 수없는 일조차 고충이다.

“빈궁은 홀몸이 아니니 몸가짐에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라. 어서 쉬도록 하고 발인 날에도 밖에 나오지 말도록 하라.”

“그대로 따르겠나이다.”

세자빈 홍씨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어영대장 홍봉한이 흘러내린 눈물도 닦지 못한 채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전하, 슬픔을 어찌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사옵니까. 하오나 종묘사직에 이상이 없도록 하는 게 우선이옵니다. 그래서 세손이 다시 태어나기를 성심으로 기원하고 있사옵니다.”

홍봉한은 열여덟 살 세자와 동갑내기인 자신의 딸이 아들을 어서 낳아 이 난국을 타개해주길 진심으로 바랬다.

“경은 과인의 사돈이 아니시오. 아픔보다 종묘사직을 생각해주는 충심이 대단하오.”

“하지만 지엄한 왕실에서 세손을 정성껏 돌보지 않아 병들게 한 유모를 그냥 두시면 아니 될 것이오니 부디 법으로 다스려주시옵소서.”

궁중의 예법으로 유모도 상복을 입는 팔모八母 가운데 하나다. 영조가 망설이다가 겨우 입술을 떼었다.

“신중히 생각하겠소.”

세자는 자신에게 떨어질 부왕의 힐난을 묵묵히 기다렸다. 부왕의 눈빛에 살기가 돌고 눈 꼬리가 호랑이 꼬랑지처럼 끝이 올라갔을 때가 바로 광기로 번득일 때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세자를 추궁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마침 예조판서가 달려와 아뢰었다.

   
     

“마마, 궁내의 백관에겐 이미 천담복(국상이나 제사 때 입는 옥색의 옷)으로 곡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팔도의 크고 작은 사신使臣과 외관外官은 문서가 도착하는 날짜에 각자 그곳의 정청正廳에서 천담복으로 거애함과 동시에 전례대로 동궁께 조장弔狀을 올려 거듭 조위하게 하고 할 일을 하도록 함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라.”

다음날 임금이 임석하고 대리청정을 하는 사도세자 앞에서 어전회의가 열렸을 때다. 대사헌 김광세가 아뢰었다.

“저하, 안아서 일으키고 젖을 먹여 기르는 일은 참으로 십분 조심스럽게 하여야 하는데도, 유모가 함부로 술을 마시어 중간에 교체되는 일이 있었으니, 지금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이상 법대로 단죄하여야 마땅합니다. 또 의관醫官의 무리는 정성을 다해서 맞는 약을 잘 살펴 쓰지 않고 마침내 이렇듯 망극한 일을 일으켰으니, 심문하여 엄히 처벌해야 합니다.”

세자가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유모에 관한 일은 대조大朝(임금)께서 하교하실 것이다. 의관에 관한 일만 아뢴 대로 시행하라.”

임금이 명하였다.

“대사헌의 말이 사리에는 당연하나, 이 사람이 이미 8모(상복을 입는 여덟 명)의 반열에 있으니 지나친 처벌은 내리고 싶지 않다. 따라서 계영桂永이를 삼수부三水府에 정배하라. 이번 일은 실로 나라의 액운이다. 내의원에서 이번 일로 대명待命(대신 죽음)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니 의관을 국문하지 말고 파직만 시키라.”

세손의 장례식이 있던 날 밤늦게 세자와 세자빈은 경춘전에서 함께 침소에 들었지만 쉬 잠들 수가 없었다. 세자는 부왕이 꾸지람을 하지 않은 것이 이상한 나머지 몸이 가려운 듯도 하고 뭔가 빠진 듯도 하여 침소에서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세자빈도 부디 뱃속의 생명이 원자로 태어나주기를 천지신명께 빌면서 잠들길 바랐지만 남편의 불면증에 자신조차 덩달아 잠이 오지 않았다. 참다못해 그녀가 넌지시 물었다.

“저하, 무슨 일로 그리 안절부절 못하고 계십니까?”

“미안하오. 나 때문에 잠도 못자고 뱃속의 아기까지 고생을 시키는구려.”

“혹시 속곳을 내려드리길 원하시오면 말씀하세요. 전에도 심신이 아주 고단하실 땐 방사를 하시고 푹 주무셨지 않습니까?”

세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오. 오늘은 근신이 필요한 날이오. 더구나 임신 중에 몸을 섞는 일은 사산의 위험이 있다고 들었소. 당신을 품에 안은 지 몇 달 되어 나도 사내의 정기가 들끓고 있지만 참는 덴 내가 고수가 아니오? 어서 잠들도록 하오. 사실 난 좀 걱정이 많소. 아버님이 왜 이번엔 나를 죄인으로 몰아세우지 않으셨는지 이해가 아니 되오.”

자신을 죄인 취급했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항상 그래왔던 까닭에 오히려 세자가 불안한 상태다.

“저하께서 죄인이라뇨.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그런 생각일랑 어서 멈추세요. 죄라면 세손을 튼튼하게 낳지 못한 이 어미에게 제일 큰 죄가 있겠지요. 그 예쁜 것이 어미 품에서, 할아버지 무릎에서 재롱을 피우던 모습이 눈에 선하여 가슴이 찢어집니다, 마마. 흑 흑 흑 흑.”

홍씨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만 우시라니까. 당신이 울면 나도 울고 싶어진다는 걸 아오?”

“죄송합니다. 저하, 눈물을 거두겠습니다.”

이 새벽 누운 채 뜬 눈으로 어둠속 천정을 보는 세자 이선李愃도 이런 저런 생각에 빠졌다. 야속하게도 부왕께서 나경언이란 불한당의 말만 믿는 듯 보였다. 13년 전에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령한 것도 부왕이 선왕(경종) 때 노론과 함께 주도했던 왕세제 대리청정이 역모가 아니라 병중에 있는 임금을 위해서 했던 선한 정치행위였다는 걸 외부에 드러내기 위한 조치였다. 이 얼마나 정치적인가? 이선은 기가 막혔다. 그 자신도 이제 스물일곱 살……, 눈에 빤히 보이는 부왕의 정치행태와 속셈이 너무도 정치적이었다. 부왕이 항상 핑계를 대곤 했던 그 ‘5년 전 심중의 병’이란 것도 무진년(영조 23년) 화평 누나가 해산하다가 세상을 뜬 일이다. 더구나 그해는 전례 없이 극심한 가뭄이 들어 조선 천지가 온통 목마름에 헉헉거렸다. 이선도 그때 얼마나 실의에 빠졌던가. 그토록 의지하고 믿었던 누나를 잃은 것은 세자 자신에게도 크나 큰 손실이었다. 화협 누나는 미움을 받았고 화완만 촐랑거리며 부왕의 관심을 끌곤 했기 때문에 이선은 그때부터 가족 가운데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항상 따뜻했던 정성왕후가 승하(영조 33년)했을 땐 정말 눈앞이 꽉 막히고 자신의 암울한 장래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선은 몇날며칠을 울고 또 울었다. 설상가상 생모(영빈 이씨)조차 위로해주기는커녕 동궁을 삐딱하게 흘겨보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깊은 산에서 포효하니 큰 바람이 이는구나.

이선이 열네 살 때 쓴 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겐 ‘범’과 ‘바람’ 같은 기상이 있다.

“이게 어찌 불효란 말인가? 후원에서 말을 타고 활 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왜 불충이란 말인가?”

효종이 승하하고 청나라와 평화관계가 정착되자 조선에선 북벌 기상은 사라지고 현실과 동떨어진 ‘소중화(小中華)’ 사상이 팽배해졌다. 그래서 지배층은 무武를 일개 병사가 추구하는 것이라고 멸시하곤 했다.

“이래서야 어떻게 부국강병을 이룬단 말인가”

잠은 오지 않고 어둠을 응시하는데 그때 세자의 시야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백수의 제왕다운 품위와 용맹을 지닌 그놈이 성큼성큼 걸어서 이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선은 질겁하며 얼른 아바마마의 뒤에 숨었다. 그런데 정작 부왕 자신은 호랑이가 무서워 벌벌 떨고 있어 세자를 가려주질 못했다. 더구나 부왕은 포수들을 불러 호랑이를 쇠창살 속으로 유인하게 했다. 호랑이는 곧 울안에 갇혔다. 굵은 쇠창살로 만들어진 우리에 갇힌 호랑이는 빙빙 돌면서 무섭게 포효하기만 할 뿐 이선에게 덤벼들지는 못했다. 이선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호랑이는 바로 자신이었다. 자기가 울안에 갇혀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빙빙 돌고만 있었다.

“아, 내가 가위눌렸구나.”

이선이 깨어나며 딸막이자 홍씨도 깨어 말을 건넸다.

“저도 당신 꿈을 꾸었어요. 무서운 꿈이시면 저를 꼭 안아 두려움을 푸세요.”

자신을 사랑한 남편이고 벌써 아들 의소, 산(정조), 딸 청연, 청선까지 두었으니 모두 넷을 낳은 지아비가 아닌가. 의소는 이미 잃었고 유일한 희망인 산이 왕위를 계승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도 없었다. 이젠 벌어질 대로 벌어진 부왕과 세자 사이에서 자신의 친정 안국동 풍산 홍씨 가문의 영광에 득이 될 선택만 남았을 뿐이다.

이선이 여전히 돌아누운 채로 화를 냈다.

“거참, 내가 어찌 당신을 안아서 가슴의 울화를 가라앉힐 수 있단 말이오.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두 사람 밖에 없소.”

“어머나. 진즉 세상을 뜬 빙애(수칙 박씨)는 아닐 것이고 설마하니 머리 길러 평양서 데려온 양제 가선이는 아니죠?”

“잘못 짚었군.”

“그럼 누구죠? 박필수 내관?”

박필수 내관은 이선이 구해달라는 웬만한 책들은 모두 구해왔고 심지어 천주교 서적인 <성경직해聖經直解>를 왕실 서고에서 살짝 빼 온 일도 있었다. 그가 밖에서 구해온 ‘칠극七克’, 연애소설 ‘금병매’, ‘서유기’와 ‘수호지’, 중국 괴기소설 ‘평요전平妖傳’으로 세자는 홀로 고립된 외로움을 많이 덜 수 있었다.

이선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내 병은 아버님과 나만이 고칠 수 있소. 나와 십팔 년을 살고도 아직 모르오?”

“마마, 미안합니다.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바마마와 마마 두 분만이 고칠 수 있는 병이시란 말씀이 명답입니다.”

“아, 어제 하루도 정말 지치고 비참한 하루였소. 새벽까지 이어진 단말마의 고통을 누가 알아 주리요. 이 무슨 가혹한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소. 내가 얼마나 더 아바마마의 꾸지람을 당하고 얼마나 더 울부짖고 엎드려 이마에 피가 흐르도록 찧어 대죄해야 한단 말이오. 나도 이젠 지칠 대로 지쳤소.”

이선은 죽고 싶은 마음이란 말을 차마 꺼내진 않았다.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6년 전(영조 32년 5월) ‘술 사건’ 때, 5년 전(영조33년 6월) 수양어머니 정성왕후 인산因山(왕이나 왕비의 장례) 때, 그리고 그 해 9월(영조 33년) 빙애 문제로 심한 꾸지람을 당했을 때도 그랬거니와, 바로 어제……, 벌건 대낮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말도 안 되는 모함을 당해 아바마마와 신하들 앞에서 죄인취급을 당할 때는 정말이지 혀를 깨물어 죽고 싶었다.

이 일 저 일 두서없이 반추하던 이선은 순간 이광현 주서를 떠올렸다. 주서는 <승정원 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 이광현이 노론 대신들의 요청을 묵살하고 임금과 대신들의 모든 대화를 옳게 기록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이렇듯 몇 안 되지만 조선의 장래를 진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반드시 정의가 꽃피고 말 것이다.

하긴 마음에도 없던 말, ‘성상의 지극하신 자애로움 덕분에 함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신하들에게 했던 말은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은 말장난’이었다.

홍씨가 조신하게 말을 건넸다.

“하오나 마마, 다른 즐거운 생각을 해서라도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그래야 잠도 잘 올 것입니다. 의소가 태어난 날을 기억나세요?”

“아바마마께옵서 기뻐하지도 않은 탄생이 아니었소? 난 그때 일을 떠올리면 기가 막힐 뿐이오. 화평만 사랑스럽고 의소는 사랑스럽지 않은 게 어느 나라 궁중 법도란 말이오. ‘네가 어느 사이에 자식을 두었구나.’ 하고 격려말씀 한 마디쯤 해주는 것이 그렇게 힘 드는 일이오?”

******* ******* ******* ******* ******* ******* ******* *******

   
     

소설가 이선구(59) 프로필

전북대 의대 졸업.
2007년 <계간 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시의 칼레누스>, <베네치아 코텍스>, <왕릉의 잔>, <사자의 춤>(전 3권), 등과 단편 소설집 <유리병 속의 코끼리>, <욕망을 팝니다> 발표
<계간문예> 소설문학상, 아시아황금사자문학상, 하이네 문학상,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장려상), 한국PEN문학상 수상

 
이선구의 다른기사 보기  
ⓒ 데일리전북은 소셜 미디어로의 지향과 발맞추어 SNS 상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명사들의  
글을 집중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SNS 포커스와 일부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데일리전북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12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4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최근 인기기사
전북대 이중희 교수팀, '초고효율 고
제6회 잡영챌린지 큰 관심 속 개최
양용호 도의원, 전북도 해양산업 관련
전북대 컴퓨터공학부 ‘AR Lab팀’
장수초 총동문회, 경로당에 대형냉동고
전북대 왕은철 교수 저서, ‘세종도서
전북도, 도시재생 뉴딜 공모사업 첫
  인사말씀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주소:(56401) 전북 고창군 심원면 궁산1길 73 데일리전북
전화: 063) 253-0500 | Fax: 063) 275-0500
등록번호: 전북아00023 | 등록연월일 : 2007.6.25. | 발행 · 편집인: 이대성 | 청소년 보호 책임자: 이대성
Copyright ⓒ since 2007 데일리전북.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22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