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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자의 예술기행 37] 루시아의 고백..언니 나 실은 수녀였어요
2017년 09월 20일 (수) 22:44:21 이양자 osong0670@hanmail.net
   
  베네치아 루시아와 함께..1997년 11월  

런던에서의 대형 박물관 관람은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안에까지 이어져 맴돌았다. 16세기의 이집트, 그리스, 중국의 미술품들이 전시되고 있었지만 왠지 개운치가 않았다.

어떤 경로로 영국 땅에서 보존되고 있는지 전문지식을 더듬기 이 전에 당시의 영국이라는 거대한 실세가 내 감정 안에서 긍정적으로 자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현재까지 잘 보존돼 있는 것으로 뒤집어 생각해보자 해도 타국의 박물관에 붙박이처럼 진열돼 있는 타국 유물들은 모두 향수에 젖어 있었다. 한때 태양이 지지 않았던 영국의 거대함은 대형 박물관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호수같이 잔잔한 지중해의 가을 창공은 깃털처럼 부드러운 구름으로 가득했다. 비행기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조금씩 하강하며 드러나는 지중해의 물 위의 여객선들이 작은 종이배처럼 떠있는 모양이 앙증맞아 보였다.

로마의 가을 오후 햇살은 유난히 밝고 따사로웠다. 한국의 11월 보다 싸늘한 맛이 훨씬 덜했다. 우리를 마중 나온 미스터 박은 훤칠한 키에 호감이 가는 편안한 청년이었다.

   
  바티칸시티  

대학진학이 부진하자 무조건 부모를 졸라 어학연수를 이탈리아로 택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우연히 한국 현지 여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청년은 바이올린을 전공한 이탈리아 아가씨와 결혼했다고 했다.

10년 세월이 흘러 큰 아이가 7살이고 지금은 어엿한 자신의 여행사를 운영하며 탄탄하게 살고 있는 37살 한국 청년 미스터 박이 참으로 든든해 보였다.

그의 아내 테레사도 생활 전선에 나서기 위해 클래식 연주를 포기하고 칸초네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고 했다. 며칠 동안 우리를 태우고 다닐 이태리 미남청년 버스 기사 도미오도 인상이 너무 좋아 로마 첫날은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 숙소는 바티칸 교황청에서 멀지 않은 프로페르지오(Properzio) 거리에 있는 로마 전통 호텔이었다. 정원에 둥글둥글한 이태리 소나무가 정갈하게 들어서 있는 아담한 집이었고 루시아와 나는 여장을 풀고 흠뻑 로마의 정취에 젖기 시작했다.

파리에서와는 다른 패션으로 치장했다. 일단은 낙엽색깔의 길다란 머플러를 허리에 두르고 하루 종일 묶고 있었던 긴 머리를 풀어 한 가닥 리본으로 장식했다. “우와 너무 아름다워요. 언니! 누가 언니를 50으로 보겠노. 바람쟁이 이태리 남자들이 꾸벅 가겠네!” 루시아의 감탄사가 결코 싫지 않았다.

루시아는 머플러 대신 묵주를 챙겨 들었다. 철이 덜든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저녁식사는 빅토리아가의 번화가 예쁜 레스토랑에서 했다.

그곳은 사람들로 붐볐다. 생각보다 좁고 지저분하고 떠들썩한 거리가 산만하여 안정감은 없어도 자유분방한 거리는 사람 사는 냄새로 그득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금방이라도 이가 기어 내려올 것 같은 지저분한 집시들의 모습은 석양 아래 아주 멜랑꼬리하게 보였다.

‘헝가리 무곡’이나 ‘카르멘’을 즐겨 들으며 상상했던 집시 모습이 아닌 건 아쉬운 정경이기도 했다. 더구나 미스터 박이 집시들을 조심하라 했으니 더더욱 신경이 쓰여 더 이상 낭만을 따질 겨를 없이 소지품에 신경을 썼다. 10시를 넘기며 로마의 밤도 깊어가기 시작했다.

   
  6월의 아침 2001년작..120*90 5배지 채색  

다음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라’ 등 바티칸 시국으로 향하는 로마에서의 아침은 성스럽고 감격적이었다. 루시아도 나보다 훨씬 전에 깨어 준비하고 있었다.

하얀 미사포, 묵주 등등. 평소 미사포와 묵주는 열심히 마련하는 습관이 있어 이 날도 내 미사포는 루시아 것보다 훨씬 하얗고 우아했다.

44㏊밖에 안 되는 세계 최소의 독립국 바티칸 시국, 세계 가톨릭의 총 본산으로써 5억6천만 가톨릭 신자들의 영혼의 고향인 작고도 큰 나라…. 높은 성곽을 따라 극히 짧은 시간에 나는 꿈에 그리던 바티칸 시국에 발을 올렸다.

아득히 드넓은 광장, 거대한 기둥으로 이루어진 산피에트로(성베드로) 대성당이 보였다. 284개의 기둥으로 돼있는 건물은 유럽문화의 유산이며 르네상스와 바로크예술의 극치인 것이 분명했다.

이탈리아의 긴 역사는 왕당과 교황당의 투쟁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1929년 뭇솔리니와 교황 사이에 서명된 라테라노 조약에 의해 독립국으로 결정된 것은 종교를 떠나 정신문화의 위대성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5억6천만 가톨릭 신자들을 위하여 일하는 천 명의 시민들…, 대성당과 바티칸의 교황과 사제들의 주거지, 정부 사무실, 미술관, 신문사, 은행, 방송국, 우체국 등….

로마에서 편지를 부치는 것보다 바티칸 우체국에서 부치는 것이 어느 곳에나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으나 신기할 뿐이었다.

시티 안에는 교황과 사제들, 그리고 교황의 허락 하에 살고 있는 근무자 가족들뿐 그 이외는 로마에서 통근하는 샐러리맨들이라고 했다.

따라서 낮의 바티칸 인구는 사실 1천명이 훨씬 넘는다. 6억 가까운 가톨릭 신자들의 공동체를 위해 일하고 있는 바티칸의 존재는 신비스럽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이 아닌 어떤 사람도 이 훌륭한 조형예술의 거대한 덩어리를 눈앞에 두고 인류의 정신문화가 그 얼마나 위대한가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산피에트로 대성당 안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호화찬란했다. 그리스도의 제자 베드로 무덤 위에 자그마한 성당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7만 명을 수용하는 세계적인 성당으로 거듭난 사실은 곧 기적이 아닐까?

짧은 치마나 반바지 차림은 아예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어 관광객들의 모습은 모두 미사를 참례하려는 듯 정중했다. 불행히도 일주일에 한 번씩 창문을 열고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바티칸 대 광장의 중앙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곳에서 처형되었다는 베드로의 묘지는 성당 안에 잘 안치돼 있어 신자들의 기도 행렬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루시아는 베드로 묘지 앞에서 긴 시간을 기도하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솟아난 나의 신심은 뜨겁게 불타기 시작했다.

피 흘리는 아들 예수를 무릎 위에 올려 안고 고통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눈물은 내 가슴을 훑어 내렸다. 나는 이 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앞에서 기도는 안했지만 많이 울었다. 내 손을 가만히 잡아준 루시아의 눈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언니. 나 사실은 수녀였어요.” 이 날 늦은 밤 루시아의 갑작스런 고백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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