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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수필] 깊어가는 카사블랑카의 밤.....고안상
2017년 08월 10일 (목) 21:55:24 고안상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모로코 여행기-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모로코를 방문하고자 우리 일행은 영국령 지브롤터 가까이에 있는 항구도시 알제시라스에 도착했다. 모든 출국수속을 마치고 오후 4시 40분쯤 출발하는 탕헤르 행배에 올라 알제시라스를 출발했다.

지중해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에서 알제시라스를 바라보니 며칠 동안에 정이 들어서인지 스페인을 떠나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저만치 우뚝한 성체 모양을 드러내고 있는 지역이, 바로 16세기 영국이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스페인으로부터 얻어낸 지브롤터란다. 이 지역은 지중해에서도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거리가 가장 좁은 지역이어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로 열강들이 눈독을 들이던 지역이었다. 결국 영국이 이 지역을 차지함으로서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배들이 넘나들었을 이 푸르른 바다를 항해하게 되다니, 참으로 감회가 깊었다.

이곳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려고 항해했고, 고대로는 카르타고, 페니키아,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군함과 무역선이, 중세와 근대에는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군함이나 상선들이 그 위용을 떨치며 드나들었던 역사의 자취가 숨 쉬는 바다이다. 또한 지중해는 스에즈 운하가 개통된 뒤부터 유럽과 중동, 그리고 아시아지역 여러 나라들의 수많은 배들이 오가는 아주 중요한 교역의 중심무대다.

쪽빛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오랜 역사의 현장이던 지중해에 푹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모로코란다. 알제시라스에서 출발한지 40여 분 만에 모로코의 탕헤르에 도착했다.

탕헤르는 모로코의 주요 항구로 지브롤터해협과 맞닿아 있으며, 스페인 남단에서 27㎞ 떨어져 있다. 무역과 관광 중심지일 뿐 아니라 건축업, 어업, 방직업 등이 발달한 도시다. 2014년 기준 인구는 95만여 명의 대도시로서 고대 페니키아의 무역거점도시로 알려져 있다. 705년쯤부터 1471년까지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은 뒤, 17세기까지 스페인·포르투갈·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684년 모로코에 반환된 뒤, 19세기까지 영국의 영향력이 강했으나 서서히 모로코의 외교 중심지로 번성했다. 그 뒤 국제공동관리지역으로 남아 있다가 1956년에 독립한 모로코 왕국에 통합되었다. 지금은 탕헤르 주의 주도로서 그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저 동방의 먼 나라에서 온 우리를 맞아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던지, 윙윙거리는 모깃소리에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모닝콜소리에 아쉬운 잠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수도 라바트와 제1의 도시 카사블랑카를 관광하고자 버스에 올랐다. 탕헤르와 카사블랑카를 잇는 340㎞길이의 고속도로는 눈이 시릴 만큼 푸른 대서양과 숨바꼭질을 하며 남쪽으로 달렸다. 양떼들이 야트막한 구릉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고, 밭에서는 사람들이 농사일을 하며 부지런히 땀 흘리고 있었다. 차창을 스쳐가는 이국적인 모습에 푹 빠져들었다.

모로코는 사하라지역을 제외하면 면적이 약 44만㎢이며, 인구는 3,400만으로 주로 90% 이상이 베르베르인과 아랍인으로 이루어진 이슬람국가이다. 모로코는 입헌군주국가로 하산 왕가는 요르단 후세인 왕가와 함께 이슬람국가의 왕가 중에서도 뿌리가 있는 가문임을 자랑한다. 주요산업은 밀, 올리브, 오렌지, 사과를 재배하는 농업과 목축업이 주를 이루지만, 역사유적지를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과 경공업, 그리고 광업부문의 생산량 증가로, 아프리카에서는 경제력이 5위인 꽤나 안정된 나라라고 한다.

수도 라바트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었다. 점심을 들고 잠시 관광을 했다. 모로코 왕궁은 출입을 금하고 있어서 밖에서만 겨우 구경할 수 있었다. 이어서 1333년 알모하드 술탄에 의해 건축된 모스크인 그랑 모스크에 들렸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이지만 이슬람교도 이외에는 내부에 들어갈 수가 없다하니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또 모스크 바로 뒤에는 살레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시디 압델라 벤 하산의 묘가 있지만, 이곳 역시 입장 불가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잘 정돈된 가로수 길을 빠져나와 마지막 목적지인 카사블랑카로 향했다. 한 시간 반쯤 달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카사블랑카는 1468년 포르투칼사람들이, 해적의 기지인 이 마을을 점령한 뒤, 1515년 이곳으로 돌아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하얀 집’을 뜻하는 카사블랑카로 명명했다고 한다. 그 뒤 1755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뒤 버려져 있던 것을, 알라위의 술탄 시디 무하마드 이븐 아브드 알라가 18세기말에 이곳을 재건했다고 한다. 그 뒤 스페인 상인들과 그 밖의 유럽 상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카사블랑카는 1907년 프랑스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1912년부터 1956년까지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있으면서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어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우리는 카사블랑카에 도착하여 재래시장과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은 고급주택가를 돌아보았다. 재래시장에는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온갖 농수산물이며, 의류, 그 밖의 잡화들로 넘쳐났다. 우리네와 별로 다름없는 모습의 전통시장임을 엿볼 수 있었다. 고급주택이 즐비한 대서양연안 언덕에서 바닷가를 바라보니, 파도가 세차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밀려왔다 다시 밀려간다. 그 푸른 바다 속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밀려오는 파도 타며 물놀이에 푹 빠져 즐기고 있는 모습이, 풍랑으로 배가 침몰된 뒤 어느 이름 모를 섬에 닿아 겨우 목숨을 건진 이야기속의 주인공이 보았던 장면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인 일인가? 그리고 저편 바다 가까운 곳에 보이는 모스크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하산2세 이슬람사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우뚝 서있는 하얀 등대는 모스크가 세워지기 전에는 모로코에서 가장 놓은 건축물이었단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저녁식사를 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이곳의 명물인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인공 릭이 운영하던 카페에 들려보았다.

카사블랑카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1942년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카사블랑카’가 만들어진 뒤부터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인들은 나치를 피해서 미국으로 탈출하거나 유럽에서 가까운 모로코로 피신했다. 이 영화의 무대도 미국으로 탈출하기 위하여 유럽인들이 모여드는 카사블랑카다. 어느 날, 미국으로 가기 위해 비자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틈에 섞여, 레지스탕스 리더인 라즐로(폴 헨라이드)와 아내 일자(잉글리드 버그만)가 릭(험프리 보카트)이 운영하는 카페를 찾는다. 일자는 릭의 옛 연인이었다. 라즐로는 릭에게 미국으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을 부탁하지만 아직도 일자를 잊지 못하는 릭은 선뜻 라즐로의 청을 들어주지 못한다. 경찰서장 르노와 독일군 소령 스트라세는 라즐로를 쫓아 릭의 카페를 찾고, 결국 일자를 사랑하는 릭은 라즐로와 함께 일자를 떠나보내는데, 공항에서의 마지막 이별장면이 특히 명장면이다. 릭과 일자의 관계를 의심하는 라즐로에게 릭은 일자와의 관계를 ‘우리는 영원히 파리에 함께 있을 것’이라며 추억을 간직하고자 한다. 그리고 릭은 아무 설명도 필요 없다는 라즐로에게 나중을 위해서라도 알아야 한다며, 지난 밤 일자가 자기에게 찾아온 것은 여권을 얻기 위해서라는 아름다운 거짓말까지 한다. 자신과 일자의 사랑은 오래 전 이야기이고, 일자는 여전히 남편인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개봉 당시 그저 한 편의 헐리우드 영화일 뿐이었으나 그 뒤 이렇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잃어버린 사랑과 구원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와 배우 험프리 보카트, 잉그리드 버그만의 아우라, 그리고 애잔한 주제곡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무르익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내와 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전개된 릭의 카페에 들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카사블랑카의 주제곡을 들으면서, 커피를 마시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한동안 ‘나도 그들처럼 멋진 주인공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는 가운데 카사블랑카의 밤은 깊어만 갔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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