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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자의 예술기행 36] 장미의 미소.. 가난한 연인들의 안식처~
2017년 07월 30일 (일) 22:00:40 이양자 osong0670@hanmail.net

“세느강에 달빛이 흐르고/ 나의 추억도 흐르네./ 그러나 영원한 예술은 늘 그대로 그 자리에 밝은 빛으로 말없이 서있네./ 나 여기서 세느강의 달빛에 취함은 오직 예술을 사랑함이네.” 감성은 이미 극치에 달아 어느 새 루시아와 나는 방랑시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붉은 노을에 젖은 강물은 진한 자주 빛으로 물들고 유람선이 가르고 지나는 양 옆으론 물보라가 피어올랐다. 가난한 연인들의 안식처 ‘퐁네프 다리’, ‘미라보 다리’…. 이들을 일부러 찾을 필요도 없었다. 조명등이 밝혀진 아름다운 다리밑들은 모두 퐁네프의 연인들로 넘치고 있었다. 마치 나그네의 외로움을 환영해주는 듯했다.

   
  노트르담 성당  

각 나라 나그네들로 가득한 유람선은 즐거움과 호기심으로 후끈거렸다. 강 양편으로 몇 백 년을 자랑하며 세워진 건축물들은 끊임없이 감탄사를 뿜어내게 했다. 치솟지 않으면서도 가지런하여 위화감이 없는 시가지, 현란하지 않은 불빛들…. 파리의 만추를 만끽하며 눈 안에 보관했다.

루시아와 나는 되지도 않은 발음으로 ‘샹숑’을 내질러댔다. 눈물에 젖은 듯한 그 유명한 빠뜨리샤 까스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파리의 지붕 밑 장밋빛 인생에서 고엽까지를 뱃전에 서서 줄기차게 강물에 쏟아냈다.

“창가에 낙엽은 흐르고 나는 당신의 입술과 여름 밤의 키스를 그리워하네….” 누군가 우리 공연에 우정의 박수를 보내왔다. 향수에 젖은 두 여인의 낭만은 멈출 줄 모르며 강물과 함께 그렇게 자꾸만 흘러갔다.

아쉬운 세느강 유람이 끝나기도 전에 물색 모르는 일행들은 안내자를 졸라 ‘빨간 풍차(물랑 루즈) 쇼’를 보겠다고 떼를 썼다. 원래 쇼 문화에 취미가 없는 나는 황당했고 조금은 화가 났다.

일정표 속에 프로그램이 없어 선택했는데 이를 유도하고 있는 현지 안내자가 밉기도 했다. 만만치 않은 돈까지 얹어주면서 기를 쓰는 일행들을 루시아도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군인 출신이라고 소개했던 60대 모 인사는 손을 휘둘러가며 ‘리도 쇼’를 안보고는 파리를 말하지 말랬다고 된소리로 구경을 청했다. 어느 새 문화의 차이가 벌어지는 현실 앞에 짐짓 나머지 일정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펄펄 뛰며 졸라대는 바람에 뮤스 신은 일행들을 ‘물랑 루즈’로 안내했고 우리 둘은 신을 따라온 예쁜 마드모아젤 셸을 따라 노틀담 성당앞 선착장에서 먼저 내렸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어느 해인가 누군가의 대접으로 찾았던 ‘워커힐 쇼’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나왔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셸은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우리의 선택이 멋지다는 표현을 보내 왔다. 우리는 셸을 따라 노틀담 성당으로 향했다.

   
  90. 가을의 끝 130X90  

어둠의 강기슭에 한 자락을 걸친 듯한 프랑스의 대성당 노틀담. 뾰족하게 올라간 4개의 지붕 사이에 초연히 서있는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조각상이 은은한 불빛에 평화스럽게 미소지으며 우리를 맞았다.

“아! 어머니여….” 루시아는 무릎을 꿇어 경배했고 나는 성모 마리아를 우러르며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밤이지만 성당 문은 열려 있고 시간도 잊은 채 순례자들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콘서트홀처럼 넓은 성당 안은 9천명의 신자를 수용한다고 셸이 설명했다.

금방이라도 파이프오르간으로 연주되는 미사곡이 들릴 것만 같았다. 일요일마다 바하 리스트 헨델곡으로 미사가 진행된다니 파리 가톨릭 신자들이 몹시 부러워졌다. 금방이라도 강 밑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 꼽추 종지기가 음울한 얼굴로 나타날 것도 같았다.

반신불수의 종지기가 추한 외모로 한 여인을 향해 평생 지고지순했던 그의 사랑! 겉만 보고 판단하는 인간들의 이기심을 뒤집기 위하여 ‘빅토르 위고’는 그렇게 노틀담의 꼽추와 빵과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을 사랑했을까?

상부의 제단 일대는 눈부신 청색과 빨강을 주색으로 성서 이야기가 곁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는 전설처럼 남아있는 종지기와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을 불러들인다. 20년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했던 집시의 ‘꼽추’는 과연 불행했을까? 꼽추역을 해주었던 배우 ‘안소니 퀸’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파리의 마지막 날은 생각보다 가파르게 보냈다. 루브르 박물관을 쫓기듯 스쳤지만 네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수와 1세’에게 선물했다는 모나리자와 암굴의 성모 그림만은 눈 안에 착실하게 넣어두었다.

파리 교외에 있는 고딕식 사원인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기 위한 호기심은 사실 파리에 발을 디딘 첫 날부터였다.

   
  파리의 번화가..포브로 생토로레  

베르사이유 궁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니 하루로는 불가능했지만 꼭 보고싶은 곳이 있었다. 루이 16세의 아내 마리 앙뚜아네트가 자기 고향 오스트리아를 그리워하며 지은 트리아농 궁전이었다. 트리아농 궁전은 위성처럼 배치돼 있었다.

장미를 사랑했던 마리 앙뚜아네뜨, 영광을 상징하는 거울의 방, 금빛 침대와 이불, 오페라의 방, 훌륭한 교회, 푸른 정원, 황금 잔과 주전자…. 그러나 무능한 루이 16세의 폭정과 이기적 사랑은 타국의 왕녀 마리 앙뚜아네뜨에겐 고독과 향수만을 주었던 게 아닐까? 황금잔 안의 붉은 포도주도 그녀를 안정시키지 못했다.

드디어 1793년 프랑스 대혁명은 그녀의 삶을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소용돌이 속에 비운의 왕비 마리 앙뚜아네뜨의 참혹한 최후를 맞고 만다. 큰아들을 잃고 딸과도 함께 있을 수 없었던 비운의 왕비! 그녀의 삶은 내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베르사이유의 요정이었던 그녀! 그러나 1793년 최악의 호사로 병든 1000명이 넘는 귀족들이 처형되던 날 콩코드 광장엔 비가 내렸고 단두대를 향해 걸어가는 왕비 마리 앙뚜아네뜨의 최후 모습은 초연했지만 두 뺨엔 붉은 눈물이 흘러 내렸을 것이다. 백성들의 아픔을 모른 채 호화와 사치로 눈 먼 한 세대의 역사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던 그녀. 소위 국모로서 백성의 배고픔을 헤아리지 못한 철부지를 이해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녀에 대한 연민은 애잔함을 주었다. 화려한 유품들이 애틋하게 죽어간 마리 앙뚜아네뜨의 무상함을 알려주는 듯해 베르사이유 궁을 빠져 나서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의 수치는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마지막 밤을 위해 유명한 상점이 즐비한 파리의 중심 포브로 생토노레 거리로 나섰다. 가장 멋지고 사치스러운 거리 길 양쪽에 즐비한 상점은 모두 낯익고 유명한 것들이었다. 에르메스, 웅가로, 샤를르 조르뎅, 피에르 가르뎅, 발리, 페라가모 구두…. 나는 어느새 마리 앙뚜아네뜨가 되어가고 있었을까. 쇼핑의 속물근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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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화가 오송 이양자

   
     

전북출신

전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중퇴

대만 국립사범대 미술계 동양학과 졸업

대만 국립사범대 연구소 채색학 수료

(전)전주대학교 충강(겸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 살풀이춤 이수자

전북도전 4회 입선

대한민국 국전 3회 입선

대한민국 문화예술 대상전 동상 수상

국내외 개인전과 단체전 다수 개최

현)

한국미협 강암서예학술재단 이사

강암 연묵회 회원

(사)예지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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