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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함의수용 74] 11. 무함동궁 誣陷東宮 네 글자.. 평양을 떠나
2017년 06월 14일 (수) 21:54:24 박용근 기자 okesk@naver.com
   
     

11. 무함동궁誣陷東宮 네 글자

평양을 떠나 한밤중에 세자궁으로 돌아온 세자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평안감사 정휘량이 몰래 편지를 써서 홍봉한 대감에게 보낸 것도 모른 채 세자는 깊은 꿈에 빠져 있었다.

상서롭게도 꿈에서 왕세손 이산(정조)의 출생이 반복되었다. 영조 28년(1752년) 9월 22일 그날의 일이 그대로 다시금 펼쳐졌다.

우르르-

땅바닥이 흔들흔들하면서 전각이 통째 흔들거리는가 싶더니 요란한 굉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왕세손 이산이 태어난 날치곤 한낮의 일기가 너무나 기이하고 불순했다.

꽝!

마침 세자빈에게 심한 산기가 있어 산파술에 능숙한 내의원 의녀들 몇이 경춘전에 대기하고 있었다. 천둥소리에 그들 모두 놀랐고 문정전에서 마음을 졸이던 세자 선과 내관도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사위가 어스름해지는 듯하여 의관과 내관이 창호지 문을 살며시 열고 밖을 살폈다. 그 순간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다.

꽈광! 쾅 쾅!

우둑 툭 툭툭툭!

우박이 마구 떨어지면서 듣기에도 거북한 소음을 냈다.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보다는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더 괴이했다.

세자는 혹시 모를 하늘의 뜻을 헤아리다가 이런 저런 생각들을 순서 없이 떠올리기 시작했다. 행여나 일이 잘못되어 부왕께 불려가지나 않을까, 혹시 심한 질책과 타박을 당하지나 않을까, 세자는 전전긍긍했다.

박필수 내관이 눈치를 채고 세자를 진정시켰다.

“마마, 틀림없이 좋은 일이 있을 징조입니다. 너무 심려 마시옵소서.”

“말은 고맙다만, 뭘 보고 좋은 일이 있을 징조란 것이냐?”

톡 쏘아붙이는 세자의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배었다.

“세자빈 마마께서 걸출한 제왕이 되실 원자를 낳으실 징조가 아니실까요?”

“득남을 할 거라고?”

세자가 미소를 지을 듯 말 듯 입술 끝을 미세하게 떨었다. 미상불 내관의 말을 정말로 믿고 싶었다. 만일 딸을 낳는다면 세손의 맥을 끊었다며 세자를 죄인 취급하고도 남을 부왕이었다.

내관의 말이 이어졌다.

“제 눈엔 강력한 제왕이 태어나실 징조로 보입니다. 어명이 하늘에까지 쩌렁쩌렁 울리고 세상의 부조리를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제거할 것이며, 군마의 발굽 소리로 지축을 흔드실 분이 아니시겠습니까?”

조마조마하면서도 빈말이 아니길 세자가 얼마나 기원했던가. 그날 그렇게 해서 정조 이산이 태어났다.

신하들이 달려와 임금께 감축의 말을 올리기에 바빴다. 호를 정해 주십사, 청하는 신하도 있었다. 하지만 영조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세자의 부재가 발각되었다.

   
     

세자가 오랫동안 세자궁을 비웠다는 걸 알아낸 노론에서 머리를 썼다. 세자가 서울에 없다는 소문을 문무백관들에게 마구 퍼뜨린 사람은 홍계희였다.

그는 이어서 노론 승지 홍준해를 시켜 노론계 관학 유생들에게도 알렸다. 당연히 관학 유생들이 승정원으로 떼 지어 몰려갔다.

“세자 저하께서 종적도 없이 세자궁을 비워도 되는 것입니까? 세자를 면대시켜주십시오!”

영조가 가까운 뜰에서 떠드는 어수선한 잡음을 듣고서 세자궁 입직 승지를 불렀다.

“어찌하여 선비들이 승정원에서 떠들어대는 거냐?”

“전하, 저들은 밤낮없이 종묘사직을 걱정하는 유생들이옵니다. 세자 저하께옵서 지금 덕성합에 아니 계신다면서 저하와 면대를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성화냐. 당장 유생들을 데리고 가서 세자를 입대하라.”

승지가 유생 몇 명을 데리고 세자궁으로 가는 동안 홍계희를 포함한 노론은 쾌재를 불렀다. 이제야말로 세자가 꼼짝달싹 못할 곤경에 완벽하게 빠졌다고 판단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홍계희의 정치적 절정감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세자가 버젓이 덕성합에 나타났다.

“왜들 소란을 떠느냐? 무슨 일이냐?”

세자의 당당한 등장에 그들은 모두 상추밭에 똥 싼 개처럼 꼬리를 바짝 내리고 말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지만 실은 세자가 밀대 몇 명을 미리 도시마다 대기시켜놓은 덕분이었다.

세자 저하, 노론 대신들이 저하의 부재를 알아차려 일을 벌이기 시작했사오니 속히 환궁하시옵소서.

박필수 내관의 급한 서찰이 몇 사람의 손을 거쳐 평양의 이선에게 전달되자마자 이선은 심야에 말을 달려 이틀 만에 창경궁에 도착했다.

식겁한 그들은 즉각 물러갔고 할 말을 잃은 노론 대신들도 세자에게 진현을 할 것을 당부했다. 이에 대해 세자도 근신하겠다는 대답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세자의 관서행에 대해 관련자 처벌을 정식으로 요구한 사람은 대사성 서명응이었다.

관서로 행차하실 때 저하의 신하로서 동요케 한 자가 있을 것이며, 관서로 행차하신 후 대궐에서 비답批答을 대신한 내시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저하께서 이미 뉘우치고 깨달은 실상이 있다면 어찌 이 무리들을 그대로 두십니까? 당연히 조사기관에 맡겨 그 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서를 읽은 세자가 대답을 했다.

“내가 이미 뉘우치고 깨달았다. 그런데 서명응은 내 마음을 알지 못하고 어찌 또 글을 올렸는가?”

그 후로도 유신들과 사헌부에서 세자에게 구대를 요청해 협박성 압박을 가했다. 이렇듯 궐내에서 논란이 분분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영조의 반응이었다. 영조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영조는 관서행에 관련해 세자가 목을 쳐 죽인 중관 유인식에게 휼전을 내리고, 세자를 도운 승지들과 세자궁 관료들을 처벌한 후에 명령을 내렸다.

“일이 마무리 되었으니 이제부터 신하들은 이 일을 다시 제기하지 말라.”

5월 17일에야 세자는 태묘에 나아가 참배하고 경희궁으로 가 영조를 진현했다. 하지만 영조는 세자를 꾸짖지 않았다.

이틀 후에는 세자빈 홍씨와 왕세손이 진현을 했는데 영조는 여전히 세자의 관서행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왕이 자신을 꾸짖지 않자 세자는 더욱 불안해졌다. 고민 끝에 세자는 순수한 진현을 결심하여 6월 10일 그 절차를 대신들과 논의했다.

“아무래도 며칠 안에 대조를 진현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홍봉한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저께 그만 두라 명하셨는데, 이는 날씨가 더운 것을 염려해서입니다. 우선은 보름 정도 기다렸다가 묻는 것이 어떠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세자는 지금 수가受呵(꾸지람을 들음)하면 문안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빨리 진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자시강원에서 영조께 내일 진현하겠다고 아뢰자 영조는 거부를 했다.

“지금 무더위가 닥쳐 마음이 3군三軍에만 가 있으니, 진현하는 일은 그만 두도록 하라.”

세자는 점차 영조의 심중을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 뜻을 잘 아는 홍봉한이 세자에게 말했다.

“진현에 관한 일을 아뢰면 대조께서 번번이 거절하시는데, 조정 안팎에서는 성상의 뜻이 저하께서 한여름에 움직이는 것을 염려하여 이러시는 줄 알지 못하니 참으로 민망스럽습니다. 다음부턴 성상의 뜻을 미리 탐지한 후 진현을 청하는 것이 어떨까요?”

영조의 거부가 세자의 건강을 걱정해서가 아니란 걸 잘 알면서도 이렇게 둘러댄 것이다. 세자는 사방이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었다.

그나마 관서행으로 잠시 뚫렸던 가슴이 다시금 꽉 막힌 듯했다. 세자는 약방을 불러 진찰 받았다. 자신이 아프다는 걸 알리는 길만이 노론의 공세를 무디게 하면서 부왕의 침묵을, 아니 부왕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9월에 이르러서야 영조가 홍봉한을 불러 관서행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어제 서명응의 글을 보았는데 이는 반드시 ‘선왕의 영혼’이 나를 인도하신 것이다. 세자가 도성 밖으로 십 리 정도 나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찌 천 리나 가리라고 생각했겠는가?”

‘선왕의 영혼’.

이 말은 영조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똥찬 정치적 어휘다. 선왕을 독살한 사람이 선왕 영혼의 인도를 받다니. 전에도 종종 그랬듯 영조는 뭔가 억지 말을 할 때에는 습관처럼 선왕(경종)을 들먹거렸다.

홍봉한은 임금의 말을 세자에게 그대로 전했다.

“지금 전하께 모든 것을 아뢰시고 솔직히 대죄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일단은 장인의 양심을 믿기로 한 세자가 솔직하게 관서행을 시인하는 말을 했다. 노론의 중심인물에게 자신의 비밀을 상의한 것은 정말로 대죄하려는 의미였다.

“관서행은 사실 4월 초이틀에 떠났다가 22일에 돌아왔소. 세자궁에 일하던 중관 유인식은 이미 죽었고 중관 박문홍과 김우장을 데리고 갔소. 전하께 내가 어찌 한 터럭이라도 숨기겠소.”

임금이 분명히 다시 거론치 말라 했던 세자의 관서행 문제가 5개월이나 지난 후에 다시금 태풍의 눈이 되기 시작했다. 노론 대신들과 숙의 문씨, 문성국, 정순왕후의 오빠 김귀주 등이 분주히 움직인 결과였다.

세자는 9월 24일부터 약방의 진찰을 거절하고 시민당 앞뜰에 나와 거적을 깔고 대죄했다. 게다가 단식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표시했다. 왕위를 이을 세자가 단식하는 것은 크나큰 문제인데도 대신들은 모르는 체하다가 닷새가 지나고서야 중지하라고 요청했다.

“저하, 단식하시면 대조께서도 심히 염려를 하실 것이니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대죄를 시작한지 보름 만에 영조는 세자의 진현을 허락했다. 세자는 익선관과 곤룡포가 아닌 흑립과 도포 차림으로 소여를 타고 선인문으로 나갔다. 죄인임을 자처하는 옷차림이었다. 경희궁 문 밖에서 가마에서 내려 걸어가 현모문 밖에 부복했지만 영조는 사관에게 세자의 옷차림을 물은 다음에야 진현을 허락했다.

“어찌 그런 부도不道한 일을 저질렀단 말이냐?”

“아바마마, 제가 화증이 심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관서행은 저의 큰 허물이며 거듭 대죄하고 있사와 자혜롭게 용서하옵시길 청합니다.”

영조는 의외로 화를 내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몇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건공탕을 마신 결과로 요 며칠 이상 증세가 나타난 때문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면서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하필이면 오래 전에 있었던 온갖 흉한 일들이 두서없이 눈앞에 어른거려 영조는 눈을 지그시 감곤 했다. 인삼의 부작용인 줄 전혀 모르는 영조로선 진정되기를 한참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으론 그리 말라. 이제 진현을 했으니 돌아갈 때는 차대와 서연을 규정에 따라 거행하되 현모문에서는 여輿를 타고 홍화문에서는 연을 타도록 하라. 거莒 땅에 있을 때를 잊지 말라.”

세자가 돌아오자 홍봉한이 찾아와 은근슬쩍 캐물었다. 임금과 세자 사이가 속히 벌어지길 학수고대한 그로선 내심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싶어 기대하고 있었다.

“전하께옵서 어떻게 맞이하셨습니까?”

“화를 내시지 않더군. 나 또한 여한이 없고 황공한 감회만 더할 뿐이다.”

“전하께옵서 뭐라 당부하셨습니까?”

“종사와 신민을 위하라고 하교하시고는 거 땅에 있을 때를 잊지 말라고 하셨소.”

거 땅이란 중국 춘추 시대 제나라 환공이 즉위하기 전에 피신하여 온갖 고생을 하던 곳이다. 홍봉한을 비롯한 노론은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말았다.

며칠 후에 세자는 휘령전(문정전)에서 망제를 올렸다. 휘령전은 세자의 법적인 모친 정성왕후의 혼전이고 그만큼 세자의 정성이 깃든 곳이다.

일단 겉으로는 진현 문제와 관서행으로 생긴 부왕과 세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상태는 해소된 듯했다.

세자의 행동이 당당해지자 되레 미칠 지경이 된 건 영조였다.

조선 역사상 가장 슬픈 사건의 서막이 다음해 봄에 펼쳐질 테지만 궁궐 안팎은 표면적으론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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