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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함의 수용 73] "당신은 영조의 유지를 실천할 세자가 아니다"
2017년 06월 01일 (목) 22:54:17 박용근 기자 okesk@naver.com
   
     

기생의 얼굴에서 풍기는 분 냄새가 바람에 날려 이선의 코청에 스쳤다.

“허허허. 거문고 소리 한번 좋구나. 이름이 아리수라고 했느냐?”

“제 솜씨가 보잘 것 없사오나 마마께옵서 그리 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너는 혜원이라고 했느냐? 창唱하는 목청이 참 좋구나. 대궐에서 정사에 시달려 항상 피곤하신 아바마마께서 들으시면 피로가 싹 가실 거야.”

“마마, 그리 칭찬하여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그리고 너는 목단이라고 했느냐? 네 장구 두드리는 솜씨가 대단하구나. 너희들 모두 대궐의 임금과 대신들 앞에서 한번 솜씨를 선보이면 좋겠다. 그런데 풍월이 너는 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느냐?”

이선의 눈에도 그녀가 아무런 기예도 보여주지 않은 것에 의아해 했다.

“저는 다른 기예는 없사옵니다. 다만 이야기 재주꾼입니다.”

“이야기 재주꾼? 허허허허. 평안감사는 참 행복하시겠네. 이곳은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곳이군.”

풍월이가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마마, 평양처럼 빼어난 경치를 두루 갖춘 곳도 드뭅니다. 춘삼월에는 을밀대 주변에 진달래와 복사꽃이 만발한 모습이라든가, 부벽루의 달맞이 구경, 해질녘엔 영명사에 돌아오는 스님들의 모습과 주변경치, 대동문에서 종로로 통하는 길가 연못에 아름답게 핀 연꽃, 보통강(대동강의 한 지류) 나루터 풍경, 용악산 사철 푸른 소나무, 이른 봄 대동강에 얼음 떠내려가는 모습이 얼마나 볼만한지 모르실 것입니다.”

“그래그래. 네 말을 듣고 보니 이 갈 곳 없는 객은 이곳에서 몇 년이고 머물고만 싶구나.” 갈 곳 없는 객, 이란 표현에 정휘량은 귀가 번듯 섰다. 이선이 자신의 심경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낸 말이었지만 정휘량은 그냥 듣지 않고 속으로 새겼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깊어졌다.

“저하, 잔을 한 잔 올리겠습니다.”

정휘량이 세자의 잔을 채우는 동안 이선은 풍월이의 얼굴을 응시했다.

“마마, 이제 밤도 깊었사오니 쉬셔야 합니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다오. 그러면 오늘은 끝내겠노라.”

“옛날에 높은 벼슬에 있는 어떤 형제가 어떤 사람의 벼슬길을 막으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자기 어머니께 지나가는 말로 말씀드렸답니다. ‘그의 선조 중에 과부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바깥에 나돈 소문이 제법 소란스럽더군요.’ 그의 모친이 놀라서 그런 규방의 숨은 일을 어떻게 아는지 물었답니다. 그러자 형제는 그저 풍문風聞으로 들었다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모친이 말했답니다. ‘바람이라는 건 소리만 들리지 아무런 형체가 없어 눈을 뜨고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고, 손을 벌려 잡아보려 해도 잡히지 않고, 저 공중에서 일어나 온갖 물건을 부동浮動케 하니, 어찌 이런 형체 없는 일을 가지고 남을 논평할 수가 있단 말이냐. 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과부의 아들인데 어떻게 과부를 논할 수 있겠느냐. 잠깐만 있어보아라. 내 너희들에게 보여줄 게 있다.’”

“이야기가 재미있군. 그래서 무엇을 보여주었느냐?”

“모친이 품속에 깊이 간직했던 동전 한 닢을 꺼내 보이며 말했답니다. ‘이 돈에 윤곽이 있느냐?’ 없다고 아들이 대답하자 ‘여기 글자가 있느냐?’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모친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답니다. ‘이것이 네 어미가 간직한 부적이다. 내 이걸 10년 동안이나 손으로 더듬어 다 닳았다. 음양의 근본은 사람의 혈기이고, 혈기에는 정욕이 숨어 있으며, 사상은 고독에서 생겨나는 법. 고독하게 사는 과부라 해서 정욕이 없겠느냐. 가물가물한 등불이 그림자를 밤새 외롭게 드리우고, 처마 끝에 빗방울 소리가 외로울 때, 또 창가에 비치는 달 빛, 오동잎 하나가 뜰에 굴러다니거나, 외기러기가 먼 하늘에서 끼룩끼룩 울거나, 먼 동네 닭 우는 소리 없고, 어린 종년은 코를 골며 깊이 자는데, 그 깊은 밤에 누구에게 고충을 하소연하겠는가. 반짝하여 동전을 굴리기 시작하여 방안 여기저기로 굴리다 보면 둥근 놈이 잘 달리다가도 이내 멈추거든. 그걸 찾아 다시 굴려 하룻밤에도 수십 차례씩 굴리다 보면 동이 트더구나. 나이가 들면서 점차 그 횟수가 줄어 혈기가 이미 쇠잔해져 이젠 더 이상 굴리지 않았던 거야. 내가 이 동전을 종이에 고이 싸서 간직한 지 벌써 20년 남짓한 것은 동전의 공功을 잊지 않고 가끔씩 보아 깨우치려는 것이다.’ 그리고는 모자가 함께 껴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거참! 깊은 뜻이 담긴 이야기로구나. 풍월이한테 큰 것을 배운 것 같다.”

“마마, 송구스럽사옵니다.”

다시 한 잔을 더 받고 세자가 일어서다가 그만 휘청거렸다. 내관 박문홍과 김우장이 달려와 세자를 부축했다.

“마마 과음하셨습니다. 어서 가셔서 쉬셔야겠습니다.”

어느덧 며칠이 더 흘러 이선이 평양을 출발할 때가 왔다.

“저하, 지금쯤 저하를 찾느라 조정이 발칵 뒤집혔을지 모릅니다. 저는 저하를 모시고 매일매일 가르침을 들으며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만, 행여 전하께옵서 사태를 아시고 크게 노하시지나 않을까 그게 가장 걱정이 됩니다.”

처음부터 세자의 방문을 알리는 공문서도 없었고 군사들을 거느린 위엄찬 행렬도 없는 극히 사적인 방문의 뒤끝이 어떻게 될지 정휘량으로서도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내친 김에 함흥으로 가고 싶다. 함경도야말로 라선(러시아)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야만족들이 자주 출몰하겠지.”

“선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후금이 청이란 이름을 표방하고 중국 대륙을 평정한지 한참 되었잖습니까?”

   
     

“인조 대왕께서 삼전도 굴욕을 당하신 걸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치가 떨린다. 기필코 놈들을 무찌르고…….”

“마마, 지금 조선은 군사력에 있어서 청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 판단이 맞다만, 내가 보기엔 임금의 심중에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만주 벌판을 봐야지. 조선이 좁디좁은 땅 덩어리에 언제까지나 갇혀 있어선 아니 될 것이니라.”

정휘량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왜놈들이 북경에 나라를 세워보겠다는 명분으로 조선에 발을 디딘 것이 임진왜란일진대, 힘을 기른 조선이라고 해서 북경을 차지하고 중원을 재패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나 세자의 사고가 너무나 급진적이고 실현이 불가능할 뿐더러 자칫 멸망을 재촉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어서 정휘량은 후닥닥 말을 바꾸어보았다.

“마마, 세상은 무척 넓습니다. 저는 동지사로 북경에 갔다 온 관리들한테 들은 지식 밖엔 없사오나 아주 먼 곳에 가면 중국보다 더 큰 나라가 있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넓긴 넓은 모양이더군. 내가 전에 창덕궁 수장고에서 ‘곤여만국전도’라는 지도를 보았네. 중국에서 들여왔다는데 높이만도 석 자는 되고 길이가 스무 자는 족히 될 것이야. 중국 밖으로 나가면 큰 나라들과 작은 나라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지.”

정휘량은 세자의 박식함에 놀라 흠칫했다.

“저하, 제가 아는 것이 일천하여 여쭙기 황송하오나 효종대왕께옵서 추진하셨던 북벌계획이 정말로 실천이 가능한 일이었다고 보십니까?”

“청의 군대는 기마전이 강하다. 기마병을 상대하려면 백병전보다는 포병전을 펼쳐야 하는데 효종대왕의 야심찬 계획대로 10만 포병을 양성했더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현종대왕 15년에는 청나라 오삼계가 반란을 크게 일으켜 청나라가 휘청거릴 때가 아니었더냐. 송시열이란 자가 임금을 기만하고 북벌정책을 흐지부지 물에 젖은 화선지 마냥 만들어버렸어. 만일 효종대왕께옵서 더 오래 사셨더라면 그 기회를 반드시 포착하여 오랜 계획을 기필코 수행하셨을 것이다.”

속으로는 비웃으면서도 정휘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자의 설명에 화답하는 척했다.

“그렇습니다. 포병전을 준비하기만 했더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입니다.”

“명을 멸망시킨 것도 청의 기마병이 아니었더냐. 하지만 청의 군사력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지배층인 만주족이 피지배층인 한족에 비해 절대 열세거든. 한족 200명에 만주족 1명꼴이라고나 할까. 조선이 청을 공격하면 한족이 명나라 재건을 부르짖으며 일어날 것이고 만주족이 소수로서 조선군과 명군을 동시에 상대하기가 버거울 게 틀림없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효종대왕의 전략이셨다.”

“마마, 봉림대군(효종)이 소현세자를 제치고 왕위를 계승했다는 의미는 부왕 인조 임금의 유지遺志를 그대로 이어서 실천할 군주였기 때문이 아니옵니까?”

이 말 속에는 당신은 영조 임금의 유지를 이어서 실천할 세자가 아니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효종과 현종, 숙종으로 이어지는 삼종의 혈맥만 강조되었지 인조대왕의 ‘북벌’ 유지는 이어지지 못했잖은가?”

삼종의 혈맥을 운운하는 이론은 어디까지나 권력욕에서 나온 노론의 주장일 뿐 진짜로 핵심 철학이었던 ‘북벌의 유지’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돌직구였다. 족집게처럼 정확하게 짚어낸 세자 앞에서 정휘량은 전전긍긍했다.

“그게……, 제 말씀은 소현세자께서…….”

“왕세자였던 소현세자가 부왕과 뜻이 달라서 폐위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건가?”

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긴장감이 맴돌았다. 소현세자가 부왕 인조에게 독살을 당했다는 항간의 소문처럼 봉림대군(효종) 역시 왕위에 오른 지 11년 만에 갑자기 독살을 당했다는 게 당시로서도 거의 정설이었다.

정휘량이 저만치 앉아 있는 내관들을 흘끔거리며 열을 올렸다.

“효종 임금께옵서 급자기 승하하신 이유가 북벌계획과 결코 무관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들은 북벌을 지지하는 척하면서 자리만 차지했지 실상은 북벌을 반대하였습니다. 특히나 효종 대왕께옵서 송시열 대감과 독대를 하신 후에 승하하셨던 일을 생각해보십시오.”

“임금을 신하들이 옹립하는 택군擇君을 말하는 것이냐? 그것은 역신이나 할 짓이 아니더냐?”

이 말 속에는 부왕 영조의 등극을 비난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북벌의 뜻은 숭고하기조차 한 원대한 포부입니다. 하오나 북벌을 지지하는 척, 추진하는 척 시늉만 하고서 뒤에서는 권력의 열매만 챙기는 무리가 항상 있사오니 그 점을 유념하십시오.”

정휘량은 속이 매우 불편했다. 어차피 폐위될 세자에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하다 보니 마치 자신이 사도세자의 북벌의지를 추종하는 듯 되어버린 것이다. 만에 하나, 자신의 이런 말이 정승들 사이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목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온통 노론 일색인 육조대신들에게 북벌을 꿈꾸고 소론과 가까운 왕세자가 눈엣가시인데 자신의 말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는 날이 곧 제삿날이 될 게 너무나도 뻔했다.

“내게는 이완 장군 같은 충신이 필요하다.”

   
     

세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야지랑을 떠는 정휘량 같은 자에게 해줄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 무겁다는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무술을 연마했던 효종임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세자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10만 대군을 양성하고, 화란인 박연에게 홍이포를 제작케 하여 사용법을 가르치게 했던 효종임금이 이완 장군을 기용할 당시의 일화가 스쳐갔다. 모든 무관들을 다 궁궐에 불러들인 후 복병으로 하여금 화살을 마구 쏘게 했다.

모든 무관들이 임금을 보위하기는커녕 제 목숨을 부지하려 저마다 허겁지겁 도망을 치는데 이완 장군만은 등에 화살이 꽂힌 채로 임금을 호위했다. 그래서 효종대왕이 그를 긴히 썼다. 북벌계획을 책임질 최고 지휘관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평양에서 지내는 열흘 동안 세자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부왕과 노론의 그물에서 벗어난 자유로움 속에서도 왠지 모를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은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서(지금의 황해도 금천군)현령인 김종수와 영유(지금의 평안남도 평원군)현령인 조정이 평양으로 세자를 찾아왔다.

“마마, 속히 환궁하시어 때를 기다리소서. 지금은 조정의 분위기가 저하께 매우 불리한 시점이옵니다. 저희들의 충심을 깊이 숙고하시옵소서.”

김종수는 불과 3년 전 세자익사위의 세마(세자의 호위무사)로써 세자를 보필한 적이 있어 세자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비록 노론이었지만 김종수의 올곧은 정신은 정조 임금 때 정승으로 발탁되어 채제공과 함께 균형 잡힌 국정을 수행하는 데 크게 쓰이게 된다. 평양에서 돌아온 세자가 아들 이산(훗날 정조)에게 남긴 말이 있다.

“내가 이번 행차에서 강직한 신하 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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