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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39] 아들이 꼭 왕이 되겠다는 야심찬 왕자라 믿었다
2015년 09월 14일 (월) 09:54:59 박용근 기자 okesk@naver.com

금은 서재 양성헌의 묵필과 화선지 쌓아두는 방으로 가 선반에서 두루마리 형태로 둘둘 말린 그림을 하나 꺼내어 가져왔다. 따지고 보면 그 그림은 보물과 다름이 없었다.

3년 전 부왕이 여덟 달씩이나 병석에 있으면서 연잉군과 연령군이 곁에서 자주 시중을 들었다고 하여 은 열 냥과 말馬을 함께 하사하여 그 기회에 박동보 대감에게 그리게 했던 것이다.

사실 숙빈은 내심 오늘 초상화를 다시 보고 연잉군이 틀림없는 숙종의 아들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병적으로 반복되는 불안증이랄까, 꿈에도 듣기 싫은 그놈의 흉측한 소문에 대한 반항 심리라고나 할까.

태어나자마자 두 달 만에 세상을 뜬 첫 아기는 김춘택의 씨라 치더라도 둘째인 금은 틀림없는 숙종의 씨이건만 이젠 이 믿음마저도 때때로 흔들리곤 했다.

게다가 몸이 오래 아프다 보니 점차 자신의 계산법에 확신이 가지 않았다. 나쁜 소문에 시달리면서 곱씹고 또 곱씹다 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고 마는 게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일까?

금이 펼쳐서 벽에 건 초상화를 숙빈은 숨을 죽이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옷깃을 둥글게 만든 단령團領에 오사모를 쓴 아들의 모습은 과연 왕자다웠다.

   
     

쿨럭!

순간 기침이 나와서 그녀는 얼른 손바닥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단령에는 맹수인 사자와 닮은 신수神獸, 백택白澤의 문양이 붙어있었다.

백룡이 낳았다는 전설의 동물 백택. 해치와 닮은 모습인데 머리에는 뿔이 돋아 있고 몸에는 비늘이 가득한 그놈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왕실의 법도에 따라 조선 초기부터 왕자의 흉배 문양으로 지정된 백택을 보자 그녀는 가슴이 진정되었다. 더구나 청색 비단에 금실로 백택을 수놓은 이 흉배는 자신이 알기로는 중국에서 하사한 선물이었다.

아들이 직접 쓴 건구고궁乾九古宮(용이 하늘에 올라가기 전 숨은 고궁)이란 현판까지 정당에 걸려있으니 그녀는 자기 아들이 꼭 왕이 되겠다는 야심찬 꿈을 간직한 왕자라고 믿었다.

오른쪽으로 얼굴을 살짝 튼 그림 속 연잉군의 모습을 유심히 보던 그녀가 또 다시 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쿨럭. 쿨럭.

그녀는 자기 입을 단단히 틀어막으며 아들의 수염과 초상화의 수염을 비교했지만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수염이 보이질 않았다.

“어머니 그만 쉬십시오. 오늘따라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순정이에게 인삼을 좀 다리도록 할까요?”

“됐습니다. 인삼은 나보다는 마마께 더 잘 맞는 약입니다. 그런데 3년 전에도 지금처럼 수염 숱이 적었나요?”

생모의 지적에 금도 초상화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수염 숱이 적은 게 아니라 아예 거의 없었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은 연잉군입니다.”

금은 턱을 어루만져보았다. 하지만 한 치 길이도 안 되고 숱조차 적은 수염인지라 잘 만져질 리가 없었다. 하긴 23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나이임에랴!

쿨럭!

숙빈은 거의 숨이 막힐 뻔했다. 수염 문제도 그렇지만 살비듬이 통통한 부왕의 얼굴 모양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갸름하고 길쭉한 얼굴 형태가 꼭 김춘택과 닮아 있었다.

수염 숱이 없는 것이 그나마 유일하게 부왕을 닮은 점이랄까. 아직은 젊기 때문에 앞으로 살이 더 붙을 거라 기대하면서 그쯤에서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색한 표정인 채 잔뜩 긴장한 금에게 숙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잉군 마마, 그림을 보니 과연 듬직한 왕자님이십니다. 다만 한 가지, 어서 살이 찌셔야겠습니다.”

장다리(장희빈)는 한 철이요, 미나리(민씨, 인현왕후)는 사철이다.

장안의 아이들이 부른 이 동요를 지은 자는 바로 김춘택이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여론장악에 능통하다고나 할까. 김춘택이 ‘사씨남정기’를 한자소설로 번역한 것도 희빈 장씨를 폐위 시키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궁녀들 모두가 그걸 읽고 눈물을 흘렸으며 심지어 임금까지도 그 소설을 읽었으니 김만중의 소설 ‘사씨남정기’가 갑술환국에 상당 부분 기여했음이 틀림없다.

북촌 출신의 멋쟁이 지략가인 김춘택의 모습을 눈앞에서 떼어내려는 듯 숙빈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금이 숙종의 아들이란 점,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왕이 될 거라는 희망이었다.

“어머니, 어서 동익각으로 가 쉬십시오. 순정이를 부를까요?”

하지만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내버려 두세요. 난 괜찮습니다. 그런데 연잉군 마마, 초상화를 그리게 하실 때 어찌하여 저리도 패기가 없고 우울한 표정을 지으셨습니까? 박동보 대감이 혹시 마마를 하시下視하여 표정을 잘 담아주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이 어미의 가슴이 아리면서 자격지심조차 느껴집니다.”

자신이 미천한 출신이 아니고 사대부 집안의 딸이었다면 그따위 환쟁이 놈이 자기 아들을 이렇게 함부로 그리진 않았을 거란 표현이었다.

“박 대감은 듬직하고 믿을 수 있는 분입니다. 제게도 후했고요. 그런데 제 눈엔 초상화의 모습이 신중하고 온유한 얼굴인데도 어머니가 보시기엔 그렇게 보이십니까?”

“제 눈에는 얼굴이 온통 걱정투성이로 보입니다.”

“어머니 맘에 안 드신다면 초상화를 새로 그리게 할까요?”

“차라리 그렇게 하세요. 그 많은 서촌의 환쟁이들은 어찌하시고 하필 그림 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박동보 대감께 부탁을 했죠?”

그림 값 운운할 정도로 숙빈은 매사에 계산적이었다. 사실 그녀는 꽤 재산가다. 금이 창의궁으로 출합을 할 때 부왕께 받은 금괴도 있고 매달 받은 녹봉(월급)도 쌀 50두에 콩25두나 되는데 그동안 돈놀이를 해서 늘린 부분까지 합하면 수만 냥 재산가임에 틀림없었다. 후에 그녀가 세상을 하직하면서 그 재산은 모두 연잉군에게 상속된다.

“그림 값으로 제법 지불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십니다. 어머니, 그림의 어느 부분이 맘에 안 드시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노여움을 이만 푸십시오.”

숙빈은 그 그림이 공짜 그림이고 아들이 하사받은 은돈 열 냥을 꼬불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수척한 얼굴에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연잉군 마마, 그림의 얼굴을 보세요. 전하의 동그스름한 용안과 어디 한 곳이라도 닮은 데가 있는지!”

금은 초상화를 보고 또 보았지만 3년 전 그것이 그려질 때 특별한 문제점은 없었다.

“그러니까 새로 그리란 말씀이라면 소자는 따르지 않겠습니다.”

“왜죠? 아깐 다시 그리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3년 전 초상화를 그릴 때나 지금이나 제 자신은 그대로입니다. 설령 그때는 다소 여의고 신경이 쇠약했다 해도 저의 당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부정하는 것입니까?”

“나는 싫습니다. 부디 어미의 소원을 들어 주세요.”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의 소원 여부를 떠나서 이 일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순간 금은 그 초상화를 아예 둘둘 말아서 까만 교피(상어가죽)함에 넣어버릴 결심을 했다. 그러면 다시는 어머니와 함께 갑론을박하면서 구경할 일도 없을 것이다.

“오호라. 천박한 어미는 무시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그래서 <금병매>와 <성경직해>란 책도 숨겨놓고서 혼자만 보는 것입니까? 내 아무리 무식하지만 한자는 어려서 익혔고 사서삼경까지 떼었는데 그것들을 책방에 숨긴다고 모를 줄 아셨습니까?”

생모의 날카로운 공박에 금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금병매>는 남녀상열지사를 내용으로 하는 음탕한 소설이란 점에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성경직해>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경직해>는 1636년 예수회 선교사 디아스가 북경에서 쓴 한자漢字 종교서적이다. 이 모든 것이 생모가 양성헌에 들어와 염탐을 한 것이 아니라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숨긴 게 아닙니다. 세자한테서 빌려왔다가 돌려줄 기회를 보고 있던 것인데 숨기다니요?”

“정말로 읽지 않고 가지고만 있었다면 다행입니다. 나는 몇 장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그것이 혹시 창귀의 기도문일지 모르니 어서 속히 태워버리도록 하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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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선구(59) 프로필

전북대 의대 졸업.
2007년 <계간 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시의 칼레누스>, <베네치아 코텍스>, <왕릉의 잔>, <사자의 춤>(전 3권), 등과 단편 소설집 <유리병 속의 코끼리>, <욕망을 팝니다> 발표
<계간문예> 소설문학상, 아시아황금사자문학상, 하이네 문학상,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장려상), 한국PEN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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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인화 작가 정산 황외성 (62) 프로필

개인전 8회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 심사위원
대한민국 문인화 대표작가전 초대
대한민국 문인화 증진작가 초대전
한국 서예 문인화 특별전 초대
한국 문인화 연구회 회원
부산 누드드로잉협회회장 인제대학 외래교수 역임
현 파묵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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