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2.3 목 10:38 
검색
[최규철 칼럼] 반역지향 경상도, 풍패지향 전라도
2011년 10월 11일 (화) 11:51:00 박용근 기자 qcchoe@hanmail.net

"반역지향 경상도, 풍패지향 전라도"라는 특이한 글이 있어 소개를 한다. 인터넷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글이다. 그냥 재미로 읽었으면 좋겠다.

   
 
고려 태조 왕건은 경상도는 본시 고구려를 비열하게 멸망시킨 신라의 옛 땅이라 하여 몹시 미워하여 고려 초기 전국 천민주거지역 향소부곡의 400여개중 인구가 고려전체의 10%도 안 되는 경상도에 200개가 넘는 향소부곡을 지정하여 거의 경상도 전체를 천민주거지역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로 오늘날 천민 성씨의 대부분이 경상도가 본관이다.) 거기에 비해 태조 왕건은 왕위를 수많은 왕자 중에 유독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난 왕비 오씨 소생의 왕자, 즉 고려 제2대 혜종에게 물려준다. 수십 명 있던 왕자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말이다.

즉 태조 왕건은 수백 년 이어 갈 고려 왕가가 대대로 후백제(즉 전라도)계로 이어 나가길 원하신 것이다. 또한 전라도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을 국사로 하고 후백제 출신 박제술을 최측근 재상으로 삼았다.

통일전쟁 시에는 통일을 거부하는 신라 호족과의 전투에서 자신을 대신하여 전사한 (전라도 출신) 신숭겸을 못 잊어 한 달 여를 곡하고 식음을 전폐하였으며 신숭겸의 시신을 수습했어도 신라 놈들이 목을 베어 가져 간 탓에 머리가 없자 대신 황금으로 신숭겸의 머리를 조각하여 그 몸체에 붙여 후히 장사 지내었다. (금 머리를 노린 도굴을 우려하여 똑 같은 봉분 3개를 나란히 조성하였다. 신숭겸 묘는 지금도 봉분이 3개임).

또한, 역시 전라도 출신 최지몽을 책사(나중에 살아서는 상주국, 죽어서 태사로 추증)로 하는 등 권력의 반 이상을 전라도사람들에게 맡긴다. 살펴보면 고려 왕건은 자신의 집권에 도움을 준 무안, 나주의 전라도 해양세력에 호감을 가진 것에서 나아가, 거슬러 올라가면 비열한 신라의 술책으로 고구려와 함께 멸망했던 백제 (그리고 그 후예 후백제)에 대해 강한 '동류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고려 조정을 (호남과 충청 일부를 아우르는) 후백제계가 80년 후 현종 즉위 시까지 "꽉 잡으며" 장악하고 있었던 연유이다.

80년이 지난 현종 대에 이르러 경상도 경주 출신 최제안은 거란 침입으로 고려실록이 불타 없어지자 바로 이때다 하며 후백제계에 불리한 위조문서를 (역시 같은 경상도 경주 출신) :최항의 집에서 발견했다"며 현종에게 갖다 바친다.

고려 초에 그처럼 천시와 멸시를 받은 경상도 출신 최제안이가 가져온 80년 전에 없어진 왕실의 일급 기밀문서를 경상도 출신의 집에서 가져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겠는가? 그것도 태조 왕건이 임종 시 훈요십조를 전수 했다고 알려진 재상 박제술 본인이 다름 아닌 후백제 출신이었는데도 말이다.

"후백제계 배제하라"는 유시를, 하필 다 두고 후백제 출신 박제승에게 전수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오늘날, 왕건이 실제로 배제하라고 한 지역은 다름 아니라 성골, 진골을 따져가며 몇 백 년 간 누리던 기득권을 포기 못해 끝까지 고려에 앙탈을 부렸던 신라 호족들의 지역 경상도였다는 게 학계의 중설이다.

즉 훈요십조의 원문에서 왕건이 "낙수 (낙동강) 이남, 조령 (문경새재) 밖(즉 다름 아닌 지금의 경상도)을 배제하라"고 유시한 걸 경상도 출신 최항, 최제안이 교묘하게 "금강 이남, 탄현 밖"이라고 바꿔 치기 했다는 말이다. (이는 한국 학계에서도, 심지어 친일사학자로 분류된 이병도한테서도 객관성을 평가 받는 일본 사학자 이마니시 류 (今西龍)가 제기하여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학설이다.)

고려초기 이러한 멸시와 천대를 견디지 못하고 김사미/효심 등은 수년 동안 반란을 일으키다가 그나마 대접받던 경주마저도 천민주거지역으로 강등되고 고려 중앙군에게 너무도 많이 학살당하고 탄압당하여 밀양에 가면 아직도 까마귀가 반란군들의 시체를 뜯어먹었다는 오치재가 있다.

전라도를 우러러 평하는 고려, 조선 기록들은 매우 많다. 예를 들면 이성계는 전라도 마이산에서 금척을 받고 전라도 장수에서 봉황이 개국을 알렸다는 등 전라도를 왕조의 발상지이자 개국의 근간으로 보았고 전주, 개성, 한양을 3경으로 승격하여 전라도를 특별 대접하였다.

또한 방석의 태자비를 전주출신 심효생의 여식으로 하여 전라도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준다. 세종은 조상 대대로 전라도 장수와 남원에 살던 장수황씨 황희를 18년간 영의정으로 제수하여 국정을 총괄하게 한다.

또한 당시 전라도의 위세를 말해주는 조선8도에서 가장 크고 웅장했던 전라감영의 객사에 한나라 고조의 고향처럼 왕조가 일어난 고장이라 하여 풍패지향이란 현판을 걸었으니 지금도 전주시 중앙동 객사에 그 현판이 남아있다.

또한 정조대왕은 전라도는 조선8도에서 가장 어질고 충성스런 고장이란 뜻의 최명현절의지향(最名賢節義之鄕)이라며 최고의 찬사를 보냈고, 전라도로 유배왔던 정약용은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서 호남은 참으로 어진 사람들이라고 칭찬하였으며 김정호는 호남은 조선8도에서 가장 축복받은 땅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적 전라 좌수사를 역임한 충무공 이순신이 호남을 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 없이 어찌 나라가 있으리오)로 칭송한건 잘 알려져 잇다. (한편 경상병졸에 대해서는 군률을 위해서는 하루 한 놈 목을 쳐야 한다, 군량을 넙죽넙죽 받아먹다가도 출진한다면 죄다 도망간다고 평하고 경상도 역도들은 머리를 깎고 왜옷 입고 왜군 앞잡이 노릇한다고 개탄하였다.)

경상도는 고려 때 대부분 지역이 천민주거지역으로 묶여서 멸시와 천대를 받다가 나중에 풀리기는 하였지만 그 영향으로 천민성씨의 본관이 대부분 경상도이다. 또한 최제안 만큼이나 비열한 사람이 (원래가 경상도 연고인) 정도전인데 그는 8도 사람을 평하면서 전라도를 풍전세류, 청산미호라는 말을 만들어서 전라도를 견제하며 신권을 강조하며 왕권을 강조하는 이방원과 전라도 세력과 대립했으나 결국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방원은 전주에 경기전을 지어 이성계와 6대조를 모시고 8도의 선비들이 떠받들게 하여 전라도가 조선왕조의 본향임을 확실히 못박아둔다.

조선왕조는 그 후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사림과 남인들을 걸핏하면 잡아다가 죽이고 등용을 해도 대개 중용을 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영조 때 이인좌와 정희량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인좌는 충청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영남의 반골에 이골이 난 조선왕조와 영조는 대구부 남문 앞에 영남토벌비 (소위 평영남비)를 세우고 경상도를 지목 하여 반역지향으로 못박아 버린다. 그리고 이후 영남이 복권될 때까지 100여 년간을 영남은 과거를 볼 수 없게 제한을 가하고 행여 등용이 되어도 정5품 이상을 승진을 못하게 못박아 버렸다.

또한 나중에 복권이 되었으나 과거에 경상도 사람은 임금이 낙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순조 이후 김조순이 수렴청정하면서 소위 안동 김씨 세도정치란 게 시작되었는데, 모두 알다시피 안동은 원래 경상도에 있는데도 스스로를 자기들의 집성촌 한양 장동을 따서 장동 김씨라 부르며 서울 토착문벌로 간주한 안동 김씨 일문은 경상도의 선비들을 벼슬에서 배척하는 데 오히려 앞장섰다는 점이다. 이는 근 80년 후 대원군의 집권 및 탕평책 때 까지 계속된다... 웃지못할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

경국대전에 명시하길 관북지방인 함경도와 평안도는 등용을 제한하라고 하였고 경상도에 있어서는 영조대왕이 대구남문에 영남토벌비 (평영남비)를 세우고 반역지향으로 영남을 못박았으나 호남은 고래로 탄압이나 차별받은 기록이나 유적이 없다. 있어봐야 오늘날 조갑제, 지만원, 김용갑 같은 류의 사고방식을 가진 비주류들의 악의적인 기록이 있다. (오히려 전라도인, 특히 전주 이씨는 왕과 동성이라 하여 국족(國族)으로서 우대 받았다).

이익이나 이중환은 이인좌의 난등에 연루되어 조선왕조로부터 탄압받고 유배당하여 전라도를 본향으로 하는 조선왕조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들의 연루를 주청한 사람이 전라도 광산 김씨들이다 보니 더욱 전라도에 대해 악감정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과 애초에 비교가 안 되는 인물들인 이순신, 정조대왕, 정약용등은 전라도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으니 세상살이에 불평불만을 가진 자들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당시 주류로서 이 나라의 위대한 인물들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결론은 자명하다.

고려는 왕건이래로 전라도를 각별히 여겨 공신, 귀족 및 당, 송이 망한 후 고려로 망명, 귀화한 중국의 관료, 귀족들을 전라도의 제후로 분봉하였다. 전라도가 여느 지역보다도 기름진 곡창지대로서 세간 말로 먹고 살만 했던 점이 작용 했던 것도 물론이다.

전라도를 본관으로 하는 양반성씨가 전국 최다인 연유이다. 훗날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전라도 전주를 본향으로 하는 이씨 왕조가 전라도를 우대하고 귀히 여겼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조선은 본관제와 신분제가 엄격히 지켜진 사회였는데 조선의 주체세력인 전주 이씨나 조선후기 대명문가인 전주 최씨나 나주의 남평 문씨를 빼고서라도 같은 박씨라도 전라도 반남 박씨나 순천박씨는 우리나라 2위 성씨인 밀양박씨의 10분의 1인데도 벼슬아치가 더 많고 인구1위의 김해김씨는 조선왕조 내내 정승이 겨우 1명이나 전라도 광주의 광산김씨는 조선 3대 명문가다.

위에 말했듯 조선후기 권력을 잡은 안동김씨는 경상도와는 관계가 없는 충청도와 한양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스스로를 안동 김씨라 부르지 않고 자신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던 한양 장동을 따서 장동 김씨라고 불렀으며, 나주 출신 나합 같은 전라도 여자들이 내실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라도는 농경사회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살았던 지역으로 이 나라의 중추를 이루는 주류였고 경상도는 감히 비교도 안 되는 부와 권력을 누렸다. 이것이 조선말 일제의 침탈 때부터 일제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던 전라도를 일제가 악의적으로 탄압을 가하고 그런 사실을 식민사학자들이 인용하였으나 해방 후 건국을 주도한 전라도를 본거지로한 한민당이 이승만을 도와 건국에 참여하고 전주 이씨 이승만은 행정부수반, 전라도 출신 김성수가 부통령, 여기 전라도 출신 김병로가 사법부수장을 맡으며 60년대 초까지도 전라도는 주류였다. 자유당 시절 10대 재벌 중 다섯이 전라도 재벌이었다. (반면 경상도 재벌은 이병철의 삼성이 유일무이했다) 

60년대까지 전라도는 서울, 경기는 물론 대구, 강원도까지 국회의원을 당선시킬 만큼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경상도는 대구 폭동의 영향과 친일파는 용서해도 빨갱이는 용서못하는 이승만의 정책으로 이승만 정권에 대해 가장 많은 데모를 했던 지역이 경상도이고 당시 대구매일신문은 가장 반정부적인 신문이었다.

또한 6.25때 가장 많은 국군희생자를 낸 지역이 전라도였으나 경상도는 남로당이 주도한 대구 폭동의 영향으로 무고한 양민들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발생한 거창양민학살 사건이 보여 주듯 지리산 빨치산도 인민군 퇴각 때 급한 김에 입산한 서부 경남 출신 빨갱이가 압도적이었다.

반면 이승만은 본관이 전주 이 씨로서 스스로를 이씨 조선의 후계자로 간주하고 전주 이 씨 본향 전라도를 각별히 아끼며, 중요한 정치적 발언은 모두 호남에서 정치 유세를 할 때 이루어 졌는데, 대표적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최초로 주장했던 전북에서의 "정읍 발언"이다.

6.25가 발발하자 이승만은 경부선을 타면 불과 몇 시간 만에 갈수 있는 부산을 두고 경상도는 좌익이 많아서 믿을 수가 없다면서 먼저 전북 이리, 그리고 전남 목포로 임시정부를 옮겼다.

북한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그제서야 유사시 일본으로의 도항이 빠른 부산으로 군함을 타고 옮겨 갔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시절 경상도는 가장 낙후되고 미개한 지역으로 취급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짜 이강석 사건인데 바로 가짜 이승만 양자가 경상도를 돌면서 일으킨 사기 사건이다.

결국 이러한 경상도를 기펴고 살게 한 사건이 박정희의 쿠데타 성공이며, 그 성공을 가능케 한 것도 전라도였다.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군부는 평안도, 함경도의 이북출신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만약 당시 군부 내의 호남 장성들이 같은 삼남 출신을 지지한다는 명분 아래 경상도 쿠데타 주체들에게 힘을 실어 주지 않았으면 5.16은 절대 성공 못했을 것이다.

호남의 박정희에 대한 기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위 민정 이양후 박정희의 계속 집권에 절대적인 요인인 2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들이 전라도였다. 전라도의 압도적인 지지로 박정희는 1963년 10만 표 차로 윤보선을 꺾었고 이후 1967년 다시 전라도 표 때문에 재선에 성공했지만... 은혜를 원수로 보답한다는 옛말 마따나 박정희 집권 시절 경상도 정권은 경상도에 특혜와 특권을 몰아주며 경상도가 마치 수천 년 간 특혜와 특권을 누려 오기라도 했던 듯이 역사마저 왜곡했다.

이후 유신독재로 선거를 없애버린 유신정권은 더 이상 국민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김대중과 호남을 악랄하고 악의적으로 탄압하였으며 개발과 인사에서 호남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소외시킨 근거를 유신에 동조하는 주로 경상도 출신 학자들이 역사를 왜곡하여 제공함으로써 호남을 지능적이고 악의적으로 탄압하였다. 만약 박정희가 개발과 인사에서 호남을 소외시키지 않고 유신학자들을 동원하여 악의적인 탄압을 안했으면 전라도는 예전처럼 박정희를 지지했을지도 모른다.

[출처]

반역지향 경상도, 풍패지향 전라도 낙서장 2008/08/31 03:57
http://blog.naver.com/gaemongdungi/10034578034

박용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데일리전북은 소셜 미디어로의 지향과 발맞추어 SNS 상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명사들의  
글을 집중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SNS 포커스와 일부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데일리전북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7)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ㅇㅇ
2020-09-09 23:30:46
기자란 사람이 대놓고 카더라 듣보잡 글 퍼와서 지역혐오에.....
댓글에는 고향세탁에 허위사실 유포까지...... 잘한다.

전라도 애들은 다 이러냐?ㅋㅋ
ㅇㅇ
2020-09-09 23:30:27
기자란 사람이 대놓고 카더라 듣보잡 글 퍼와서 지역혐오에.....
댓글에는 고향세탁에 허위사실 유포까지...... 잘한다.

전라도 애들은 다 이러냐?ㅋㅋ
ㅇㄹㅇㄴ
2018-05-17 16:19:25
ㅇㅇ 당신은 경상도 관련된곳에 찾아다니며 쉴드 댓글 달고 있네
진실은 쓴법이야
해방후 지역별 친일파 명수를 봐라 다른곳은 300명을 안넘는데 경북만 2만명이다
통계는 거짓말안한다
ㅇㅇ
2017-08-07 13:50:41
부끄럽진 않은가? 경상도 지역신문에서는 이런 열폭수준의 다른 지역 비하 기사를 쓰진 않는다. 이래놓고 자신들이 지역감점의 피해자라 주장하는가?
ㅇㅇ
2017-08-07 13:50:18
부끄럽진 않은가? 경상도 지역신문에서는 이런 열폭수준의 다른 지역 비하 기사를 쓰진 않는다. 이래놓고 자신들이 지역감점의 피해자라 주장하는가?
루루
2015-09-01 18:16:17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슬픈 역사의 우리나라네요...인생은 돌고도는거니까...지금의 시대도 언젠간 바뀔날이 오겠죠?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생거용인
2012-08-27 05:08:52
역시 못말릴 경상도네요....저는 경기도 용인 사람입니다....잘 읽었습니다......
전체기사의견(7)
 1 
최근 인기기사
군산대 조혜영 교수, 한국간호과학회지
군산시, 11월 28일 0시부터 '사
동진강 야생조류 분변 정밀검사 결과,
전북도, 국회·정부 예산확보 ‘키맨’
11월 26일 오늘의 역사..1906
새만금 동서도로 개통..25일 12시
전주시 농업인대학, 박과채소 졸업생
< script async src="https://platform.twitter.com/widgets.js" charset="utf-8">
  인사말씀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주소:(56401) 전북 고창군 심원면 궁산1길 73 데일리전북
전화: 063) 253-0500 | Fax: 063) 275-0500
등록번호: 전북아00023 | 등록연월일 : 2007.6.25. | 발행 · 편집인: 이대성 | 청소년 보호 책임자: 이대성
Copyright ⓒ since 2007 데일리전북.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2200@naver.com